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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Apr 22. 2021

젬마네 저금통

   그날도 여느 날처럼 동생 덕이를 데리고 젬마네 가게로 놀러 갔다. 젬마네 가게는 우리집 앞 신작로 맞은 편에 있는 잡화점이었다. 내가 점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젬마가 뭔가를 들고 튀어 나왔다. 젬마의 큰 오빠가 수학여행을 갔다 오면서 사다 준 빨간 돼지 저금통이었다. 그런데 그 돼지 저금통에는 동전 들어가는 구멍이 막혀 있었다.     


  “이거 돈 놓을 곳 어싱게.”(돈 놓을 곳이 없어)    

 

  내가 젬마 얼굴을 쳐다보며 심드렁하게 말을 했더니 젬마는 가게에서 연필 깍는 칼을 들고 왔다. 나와 내 동생 덕이, 젬마의 동생 영미가 서로 얼굴을 디밀고 젬마가 하는 모양을 들여다 보려고 애썼다. 젬마는 작고도 얇은 직사각형의 모양의 홈을 예쁘게 자르려고 해보았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무늬의 모양에 맞게 칼이 잘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젬마는 나보다 한 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줄 넘기를 하고 빨래터에도 가고 여름이면 바다에서 보말을 잡거나 물장구를 치며 지내는 사이좋은 친구였다. 젬마가 숨을 고르려고 잠시 저금통을 내려놓았다. 

  말은 심드렁하게 했지만, 내겐 없는 것이라 부러웠던 나는 저금통을 집어 들었다. 나는 돼지 저금통의 짧은 귀며 귀여운 눈웃음, 통통하고 짧은 다리, 불룩한 배를 돌려보았다. 무엇보다 잘 잘리지 않는 동전 홈통을 어떻게 자를 수 있을지 한참을 생각했다.   

 

  “누나 나도 보젠” (나도 볼게)    


  내 동생 덕이가 옆에서 조르자 동생에게 돼지 저금통을 주었다. 무조건 따라서 한번 해보고 싶은 심정을 잘 아는 까닭이었다. 그때 내 나이가 9살, 동생은 6살이었으니까. 나처럼 동생도 돼지의 등을 천천히 돌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영미가 달려들더니 칼로 확 그어서 덕의 눈가가 찢어졌다.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순식간이라 동생도 나도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피가 맺히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울면서 한달음에 일하러 간 엄마를 찾았다. 마침 멀지 않은 밭에서 일하던 어머니는 동생을 데리고 약국에 가서 상처를 꿰매고 왔다. 나는 동생을 잘 못 돌보았다는 미안함에 간이 쪼그라들었다. 늘 바람이 불면 날아갈까 걱정하던 엄마의 외동아들에게 큰 상처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자 젬마네 엄마가 손에 사탕 한 봉지를 들고 우리 집에 나타났다. 

  “아, 애들끼리 있다 보난 이런 일도 생겸싱게...... ” (애들끼리 있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네)    


  젬마의 엄마는 어머니께 사탕 한 봉지를 건네며 당당하게 말을 했다. 

  “게매마씸 눈 안 다치낭 그나마 다행이우다.” (그러게 말이에요 눈 안 다치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더 이상 말을 못 하는 어머닐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어머니는 사탕 봉지를 받아들더니 눈물이 어룽어룽한 동생에게 사탕 하나를 밀어 넣었다. 나는 젬마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섯 살짜리가 영미가 뭐 알앙 경허여시커냐”(뭘 알아서 그렇게 했겠냐).    


  젬마 엄마는 나는 무시한 채 사탕을 우물거리는 동생에게 착하다며 머리를 쓰다듬더니 돌아갔다. 동생의 상처는 사탕 한 봉지로 끝이 났다. 나는 젬마의 엄마가 얄미웠다. 늘 우리 엄마를 얕잡아보더니만 이번에도 겨우 사탕 한 봉지라니! 게다가 나에게는 국물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머니가 동생의 상처에 대해서 내게 타박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는 어떻게 하면 영미를 골려줄까 생각했다. 아무래도 젬마와 함께 놀 때 끼워주지 않는 게, 최고일 것 같았다. 그 뒷날 나는 젬마네 집 가게 문을 두드리며 젬마를 불렀다.     


  “젬마야 놀자. 신기헌 거 찾아서. 빨리 나와.”

  아니나 다를까? 영미도 쫓아 나온다. 나는 영미를 떼 내려고 젬마 손을 잡고 성당 쪽으로 뛰어갔다. 영미는 쫓아오다 지쳐서 울며 나가떨어졌다. 나는 속으로 고소해하며 성당을 돌아 우리 집으로 갔다.     


  약속대로 변소에서 발견한 목걸이를 젬마에게 보여주었다.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사람이 버린 책 사이에 끼어 있던 거였다. 우리는 둘이서 번갈아 가며 목걸이를 하고 공주 흉내를 내며 놀았다. 그 후로도 내가 자꾸 놀이에 끼워주지 않자 영미는 내게 잘 보이려고 사탕을 주었다. 영미는 그 집 막내여서 아버지의 귀염을 받았기에 사탕을 먹기가 어렵지 않나 보았다. 나는 영미를 살살 꼬드겼다.    


  “너네 집 상점에 있는 검은 색 물은 뭐냐? 병에 담긴 간장 같은 거.”

  “그거 콜라.” 

  “기냐. 넌 좋겠다. 그런 거도 먹어 보고이. 맛이 어떵해?”

    (그래, 넌 좋겠다. 그런 것도 먹어보고. 맛이 어떻니?)    


  그러면서 나는 먹을 수 없으니 다음엔 먹어보고 와서 맛을 말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사탕을 매일 먹을 수 있으니 좋겠다고 부러워하면서 영미를 잔뜩 띄웠다. 영미가 콜라도 가져오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풍선껌 하나를 씹으면 단물을 다 빨은 뒤에도 벽에다 붙여 뒀다가 다시 씹는 처지였다. 그래선 인지 소금물로만 닦아도 나는 이빨이 썩지 않았다. (그 옛날 60년대에는 치약도 칫솔도 없었다.) 그러나 영미는 달랐다. 나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영미의 어금니는 까맣게 썩어들어갔다.  

   

  드디어 어느 날 영미는 엄마와 함께 치과로 갔다. 나는 속으로 ‘잘 코사니다’(꼬시다) 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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