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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May 01. 2021

어떵 줜뎌집디가?

태생이 아저씨

  태생이 아저씨는 소작농에 잡일을 하는 일꾼이었다. 그는 퉁방울 같은 눈에 튀어나온 광대뼈가 도드라진 얼굴이었는데 입매가 차분히 다물어 있지 않고 벌어져서 가벼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음담패설을 입에 달고 살았다. 

  봄이 되면 우리 집은 농사지을 밭을 갈아엎어 줄 일꾼이 필요했다. 어른 남정 네가 없어 쟁기질을 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리 씨 뿌리기 전에 밭을 갈기 위해, 어머니는 태생이 아저씨를 일꾼으로 들였다. 


  "야인, 씹만 꿔랑 앉앙 뭐 햄시냐?" (얘는 주저앉아 뭐하냐는 비속어)


  4월, 공기는 살짝 차가운 아침이었는데 아저씨는 소의 머리에 씌울 멍에를 다듬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소리를 내질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나는 뭔가 모를 불쾌감이 불쑥 솟아나 밭고랑 맞은 편으로 가버렸다. 어머니는 입담 거친 아저씨 옆에서 비위를 맞추며 조용히 일하고 있었다. 흙이 좋아서인지 아저씨의 깡다구가 세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우리 소는 열심히 밭을 갈아엎었고 오전 안에 집 근처에 있는 널찍한 두 개의 밭이 모두 갈렸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아저씨는 품삯을 받고 우리 집 일을 도왔다. 때때로 내 또래인 딸 아이까지 데리고 왔는데, 일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함께 라면을 끓여서 먹기도 했다. 당시에 라면은 귀한 음식이었고 그렇게 일꾼을 부를 때나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 애도 좋아했다. 우리 집에서 먹는 일이 잦아지면서 태생이 아저씨네와 우리 집은 비교적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해 겨울이 지나갈 무렵 우리 집 김치가 동이 나기 시작했는데 그 애가 김치 두 포기를 그릇에 담아 가져왔다. 그 김치는 우리 것과는 달리 고춧가루가 많지 않았고 살짝 군내가 돌면서도 아삭한 게 맛이 아주 좋았다. 며칠 후 나는 아저씨 집에 놀러 갔다. 이제는 소금 절인 배추만 남은 우리 집 김치 대신, 맛있는 그 집 김치를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놀다가 눈치껏 봐서 김치가 모자란 것 같지 않으면 한두 포기 얻어올 심산이었다. 

  방에서 놀다가 변소 간다면서 나왔다. 집이 작아서인지 멀지 않은 곳에 장독대가 보이기에 가서 살짝 열어보았다. 그런데 아뿔싸, 김치! 김치가 들어있는 장독대 안에서 구더기가 기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얼른 그 집에서 빠져나왔다. 


  다시 봄이 되었다. 며칠 사이에 밭갈이하는 사람이 태생이 아저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어머니 표정이 너무나 어두웠다. 언니를 통해 들은 사건의 전모는 이랬다. 


  우리 집 앞에는 젬마네 가게가 있었고, 그 옆집엔 우리 큰 엄마네가 살고 있었다. 젬마 엄마와 큰엄마는 아주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언제부턴가 큰엄마 집에서 국수나 밥을 해 먹는 아줌마들의 친목 모임이 자주 열렸다. 내가 사촌동생에게 놀러갈 때도 아줌마들은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젬마네 엄마가 허튼 소문을 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가 태생이 아저씨와 놀아난다고. 큰엄마는 그런 얘기를 듣고서 엄마를 감싸주거나 사실 확인도 해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을 전했다. 아줌마들의 쑥덕거림으로 옮긴 소문은 태생이 아줌마 귀에 들어갔다. 태생이 아줌마는 득달같이 어머니에게 달려왔다. 


  "어떵 성님이 경헐 수 있수과(어떻게 형님이 그럴 수 있나요)?’ 


  잡아먹을 듯이 소리치는 태생이 아줌마의 소리에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나마 평소에 서로를 알고 지냈던 사이라 어머니에 대해 좋게 생각했던 아줌마는 어머니의 하소연을 듣고는 순순히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 가슴의 멍울은 시커멓게 독버섯처럼 자라 올랐는지 오래도록 어두운 기색이 지워지지 않았다. 거짓 소문을 낸 장본인 중에 큰 엄마가 있다는 사실에 더 가슴이 쓰렸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는 일본에서 불법 체류자로 일하는 아버지 대신 밭일, 집안일, 물질(해녀일)에, 자식 교육까지 혼자 감당해내느라 너무 힘든 상태였다. 그런 어머니의 유일한 낙은 매일 성당에 가서 미사를 하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그런 엄마께 불륜이라니!


  나는 손윗동서라고 아무 말 못하고 억울함만 삼키고 있는 어머니가 불쌍하면서도 답답하고 화가났다. 평소에도 큰 엄마는 아빠가 옆에 없다는 이유로 우리 엄마를 무시했는데, 매번 그렇게 당하기만 하는 것 같아 속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태생이 아저씨도 싫었어. 그런데 큰 엄마는 더 싫어. 뭐 이런 개떡 같은 아줌마들이 있나? 어떡해야 이 억울함을 풀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한동안 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어찌어찌 견디어 냈는지, 어머니 얼굴이 조금씩 밝아져 갔다. 어느 날 나는 어머니께 조용히 물었다. 

   “어무니 속상했지예? 어떵 줜뎌집디가?”

   ( 어머니 속상했죠? 어떻게 견뎌내셨어요?) 

      ...... 

  “사람안티 상처 내는 거는 손보다 입이 더 무서운 거라라. 겅허난 함부로 입 내둘리민 안 된다 이~.”  

                                                               (그러니까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어머니는 조용히 이 한마디를 건네고선 더 말이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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