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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May 08. 2021

도둑 오빠의 아버지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인 즈음인 어느 날, 도둑 오빠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아무도 없는 대낮에 주저함 없이 대문 안으로 성큼성큼 발을 내딛다가 쓰윽 뒤를 돌아다 보는데, 그 품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때 마침 나는 혼자 옥상에서 놀고 있다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빠, 무슨 일 이쑤과(있어요)?”


  나는 태연한 척 먼저 오빠를 향해 인사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지, 오빠는 기습 같은 나의 인사에 움직이던 발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뭐 좀 찾아보려고......” 하더니 “잘 이시라(있어)” 하면서 총총히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오빠가 그냥 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빠의 이름은 순철. 그때만 해도 가난한 집은 배를 곯던 시절이라, 남의 집에서 먹을 것을 훔치던 오빠가 남의 돈까지 손을 댔다는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렸다. 그러니까 오빠는 동네의 소문난 도둑인 것이다. 

  오빠네는 육지 사람이었다. 오빠의 아버지는 남의 집 잡일을 해주면서 아들과 딸을 키우고 있었다. 순철 오빠와 순실이 그리고 순실 아빠. 이렇게 세 사람이 사는 집은 방과 부엌만 있는 단출한 살림 살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순철 아빠가 애들 교육은 제대로 안 시키면서 쌀밥을 해 먹는다고(절약하지 못한다고) 수군거렸다. 원래 텃세도 있는 데다가 오빠가 도둑이어서 더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오빠가 우리 집을 떠났어도 머리가 특이하게 흔들거렸던 그 성큼거림은 내 뇌리에 남아서 자꾸 생각이 났다. 저녁에 어머니가 돌아오자 나는 낮에 있었던 사건을 얘기했다.  

   

  “어무니 우리 집에 도둑 들뻔허였수다. 순철이 오빠가 왔당 옥상에서 인사허난 그냥 간마씨.”   

     (도둑 들뻔했어요. 인사하니까 그냥 갔어요.)    

  어머니는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혀를 끌끌 찼다. 게다가 그 집 아빠는 겨울에도 샘물에서 냉수마찰을 하며 자기 건강은 그렇게 잘 챙긴다는데, 왜 아들 단속은 못 하느냐? 고 빈정대셨다. 


  그해 여름 홀로 빨래터에 있다가 심심해서 물통 둘레를 돌았다. 갑자기 내 눈에 나타난 것은 아저씨의 아랫도리였다. 그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얼른 뒤돌아 여탕으로 향했다. 아저씨는 홀딱 벗은 몸에 두레박 물을 끼얹으며 목욕하고 있었다. 도둑 오빠인 순철의 아빠였다. 분명히 아저씨도 인기척으로 알았을 터인데 아무 말씀이 없었다. 다른 아저씨라면 크게 호통을 쳤을 텐데 이상하게도 아저씨는 조용했다. 어쨌든 그런 아저씨가 나는 고마웠다.


  빨래터 샘물은 주변을 두껍게 돌담으로 에워싸고 시멘트를 짓이겨 발라서 튼튼했다. 벽으로 나누어진 남탕과 여탕이 있었는데, 어린아이들은 돌담 벽 위로 올라가서 놀았다. 그러면 남탕과 여탕 안을 다 돌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샘물을 퍼서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고 놀기도 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빨래를 하며 놀다 보면 우리는 이집 저집의 소식을 다 접하게 되었다.  

   

  그해 겨울에 동네 아이들이 모두 다 사라지고 우연히 순실이와 나만 밖에서 사방치기를 했다. 그러다 순실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순실이가 배고프다며 집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순실이는 늘 하던 마냥 항아리를 꺼내더니 돼지 굳기름을 한 숟갈 퍼내었다. 그것을 프라이팬에 넣고 김치와 함께 볶아 반지기(쌀반) 밥에다 얹어 먹었다. 

  우리보다 못 산다고 생각했던 순실이네가 더 잘해 먹는 것을 보고서, 나는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옳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철이 오빠는 고등학교도 못 가고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 도둑질이나 한다. 못 먹을망정 그래도 우리 언니들은 시에서 고교를 다니고 있다. 침이 꼴깍 넘어가면서도 나는 먹지 않고 자존심을 세웠다.


  그러던 다음 해, 순실이 아빠가 그 샘물에서 자살을 했다. 누가 물에 둥둥 떠 있는 것을 보고 건져 냈는데 이미 죽어있었다고 했다. 소주병도 물통 옆에 놓여 있었는데 자살한 이유가 오빠가 도벽을 버리지 못해서라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아저씨의 상여를 메고 우는 소리를 내며 장사를 지내러 떠났다. 상여꾼들이 노랫소리는 언제나 구슬펐는데 그날따라 요령잡이 아저씨는 온몸을 휘어져라 꺽으면서 요령을 흔들었다.   

  

  “북망산천 멀다더니.. 어허야 어어허야.. 인제가면 언제 오나..”    


  요령잡이 노래에 맞추어 상여를 멘 아저씨들도 따라서 ‘어허야 어어허야’ 후렴을 따라 한다. 마을 길 아래에 내려선 상여를 바라보았다. 붉은 상여를 쳐다보면 죽은 귀신이 따라올까 봐 두렵다. 상여가 기어이 샘물을 돌아 나온 후, 상여꾼 아저씨들은 소주를 한 잔씩 걸치고 산으로 묻으러 떠나갔다. 보이지 않던 손가락질을 하던 손들이 아저씨를 묻으러 떠난 것이었다.


  나는 한동안 무서워서 빨래터에 가지도 못했다. 순철 오빠와 순실이는 그 후에 우리 마을을 떠나갔다. 그러나 동네 어른들은 샘물을 소독하고, 오래지 않아 샘물에서 빨래를 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가끔 순철 오빠가 아빠의 죽음으로 도둑질을 관뒀을지가 궁금하곤 했다. 어쩌다 햇빛이 쏟아지는 한낮을 마주할 때면 그 어린 시절에 옥상을 올려다보던 당황한 오빠의 표정이 되살아났다. ‘잘 있어’라고 인사하던 오빠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떠오를 때면, 아저씨로 인해 오빠의 마음도 바뀌어 도둑질을 관두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곤 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 고향을 찾아갔을 때, 샘물은 이미 마르고 빨래터는 그 흔적만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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