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바리우다 May 13. 2021

금 발톱

  언니는 장대에 추를 얹어 놓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저울을 어깨에 메었다. 언니는 앞서거니 나는 뒤서거니 어정어정 따라가고 있었다. 햇살이 사라진 오후, 뱀처럼 구부러진 골목길을 빠져나와 언덕진 길에 다가왔을 무렵 언니가 한숨을 쉬며 저울을 어깨에서 내려놓았다.    


  “우리 같이 들고 가자.”    


  내가 저울을 자세히 보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저울은 1m쯤 되는 긴 장대와 무게가 5kg 정도 되는 추로 이루어졌고 한쪽 끝에는 고리가 달렸다. 둥글고 긴 장대는 잘 닦아놓은 마호가니 장처럼 광택이 나고 매끄럽고도 단단했다. 그것이 저울 봉이 정체였다. 그 녀석은 반짝거리며 몸에 난 칼자국들을 자랑스레 비추고 있었다. 정확히 그어진 자국 덕분에 다른 막대기와는 달리 이렇게 오라 가라 대접받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어린 나의 눈에는 추가 어른 주먹만 하게 다가왔다. 


  나는 어물쩍거리며 언니가 시키는 대로 어깨에 메었다. 언니가 막 몸을 일으키는 순간 아뿔싸 추가 미끄러지며 피할 사이도 없이, 내 엄지발가락으로 떨어졌다.    


 “아 얏!”


 엄지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양말을 신지 않아 엄지발톱이 통째로 뭉개졌다. 우는 나를 달래며 언니는 말했다. 


  “울지 마. 집에 가면 내가 맛있는 거 줄게. 그리고 이 발톱 대신 예쁜 금 발톱이 자라날 거야.”

  금 발톱이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암튼 어머니께 말하면 안 돼! ”

  “응”

  언니는 나를 달래며 다짐을 받았다.    


 그 사건은 어머니가 저울을 되찾아오라고 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셋째 언니는 5학년, 나는 일곱 살 즈음이었는데 싹싹한 사라 언니가 엄마의 심부름을 하겠다며 나를 데리고 나섰다. 당시만 해도 길은 포장되지 않아 어디나 울퉁불퉁했는데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사는 사촌 집에 저울을 찾으러 갔다 오던 길이었다.

    

  다시 혼자서 어깨에 저울을 얹은 언니의 뒤를 따르면서 함께 집으로 갔다. 눈에는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서. 

  마침 어머니는 어디에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언니는 어딘 가에서 잘 감춰둔 비가 사탕 하나를 가져와 내게 내밀고선 내 뺨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솜을 빨간약에 푹 적신 후 조심스레 내 엄지발가락에 얹은 다음 광목을 찢어서 발가락을 감싸주었다. 눈물이 어른어른 한 채로 비가 사탕을 쪽쪽 빨아 먹는 내 눈에도 광목으로 감싼 발가락은 유난히 굵어 보였다.


  어머니가 집에 오셨을 때, 나는 약속대로 어머니께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바빠서인지 내 발가락에 별다른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당연히 셋째인 사라 언니는 아무런 혼도 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온 가족이 모였어도 함께 밥을 먹었을 뿐이었다. 그 뒷날이 되어서 사라 언니가 내 엄지발가락에 빨간 약을 다시 바르고 광목 붕대로 감싸주었다. 그런 일이 있는 동안에도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식구들의 관심을 받고 싶었던 그 사건은 그렇게 싱겁게 끝나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 서운함이 오래 가지 않았다. 왜냐면 금 발톱이 곧 나올 거니까.    

  평소처럼 나는 큰길 가에 사는 젬마와 함께 소꿉놀이하면서 자랑하듯 말했었다. 

  “우리 언니가 말하는데, 나한테 금 발톱이 생긴데!” 

  젬마는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발톱이 뽑혔으니까 대신 금 발톱이 생기는 거야.”

  나는 자랑이라도 되는 듯이 광목이 묶인 엄지를 내밀었다.


  하루 또 하루, 엄지는 너덜너덜한 모습 그대로다. 붉은 약을 발라놔서 색깔이 검붉은 게 영 보기가 좋지는 않다. 그렇지만 언니는 그랬다. ‘금발 톱’이라고. 

  어떻게 돋아날까? 초승달이 보름달 되듯이 금발 톱이 자라날까? 정말 반짝반짝 금칠이 나타날까? 


  나는 자못 기대에 차서 매일 매일 발톱이 자라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발톱이 있던 자리에는 말라붙은 빨간약이 검붉다가 누렇게 되었을 뿐 아무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발톱 있던 자리를 만져도 아프지 않게 되었고 살 색깔도 맑아져 갔다. 


  새 발톱이 조금 밀려 나왔다. 금색이 아니었다. 언제 금색으로 변하려나? 생각보다 발톱은 더디게 자랐고 색깔도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그래도 다 나올 때까진 있어 봐야 알겠지. 그러다 어린 나는 발톱 쳐다보는 것을 잊게 되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다 자란 엄지발톱이 내 눈에 나타났다. 그 발톱은 영 기대하지 않던 놈이었다. 전보다 모양이 더 못생긴 것 같은 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실망 그 자체였다. 아, 언니 말이 거짓말이었던 거야? 늘 상냥했던 예쁜 언니가! 


  발톱 빠진 사건이 생긴 후, 언니는 한 번도 내 발톱에 대해 묻지 않았다. 다만 언제나처럼 잘 웃을 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도둑 오빠의 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