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마음에도 쉬이 감기가 온다

by 비바리우다

할 수 없이, 업무 부서를 바꿔야 했다. 그것은 내가 열심히 공들였던 업무에서 물러나는 일이었다. 억울함이 가슴 속 그득한 상태에서, 물러나겠다고 얘기했다. 서류가 바리바리 쌓여있고 수첩도 왜 그리 많은지, 물러나려면 치워야될 것도 많았다. 열심히 일했는데, 나를 내쫓다니 뭐 이렇게 처리하나? 학교의 처사에 대해 부당함을 느끼는 내게, 나를 위로해 줄줄 알았던 선배 언니가 오히려 내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서 나를 변호해주지 않는다. 게다가 평소에 나를 아껴줬었던 그 언니가 오히려 나를 제거하길 원한다니, 어째 이럴 수 있을까? 언니는 업무의 분장도 교무실 정리도 다 끝난 마당에야 교감과 늦게 등장해서는 단호하게 내가 문제라고 말하고 있잖은가? 나는 언니의 행동에 충격을 받고 속이 쓰려하며 억울함을 호소할 누군가를 찾으려고 눈을 떴다. 꿈이었다. 새벽 3시 반이었다.



이틀 전, 내가 봉사활동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어느 덧 40이나 되는 친목 모임에서 만나자는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선택할 날짜는 2주 후 이틀 중 하나, 잠시 후 내가 생각해 보기도 전에 날짜가 결정되어 떴다. ‘어? 나는 아직 응답도 안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찬찬히 보니 나만 빼고 다들 응답이 되어있었다. 이건 뭐지?


첫 학교, 직장 모임이었다. 왕언니는 멀리서 와서 타향에서 고생한다고 나를 불러다가 자주 저녁을 대접해주었었다. 지금도 붉은 김치와 돼지고기가 어우러진데다 적당히 된장까지 섞어 넣은 왕언니네의 김치찌개가 생각난다. 왕언니가 마련한 김이 오르는 동그란 밥상은 썰렁한 방에서 혼자서 음식을 만들어 먹던 내겐 참으로 가슴 따뜻한 시간이었다.

모임의 주동자였던 둘째 언니는 마당발이었다. 얼굴뿐아니라 말도 예쁘게 잘해서 누구나 좋아했던 둘째 언니 덕에 히치하이킹을 한 것도 모자라 운전사 아저씨로부터 피자를 얻어먹었던 기억도 있다. 두 언니의 친절한 보살핌 덕에 시골에서 올라왔던 동료 교사와 더불어 저녁에 자주 모이다 보니 친해졌고, 그러다 보니 모임이 결성된 것 같다. 그동안 함께 여행도 갔었고 만나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즐겁게 수다를 떨거나 타로를 보기도 했다. 만남이 없이 더러 소원한 기간도 있었지만, 아들딸 결혼식에 서로 참가해서 축하도 해주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남은 막내가 교감 발령을 받았다고 모임을 갖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의 의사는 별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 기분이 좀 상했다. 그래서 아무런 응답도 달지 않았다. 그리곤 다른 일에 쫓겨 시간이 흘렀는데 그런 꿈을 꾼 것이다. 내가 상처를 받았구나. 꿈까지 꿀 정도로! 그렇게까지 상처가 되었을까? 감정선이 오르락내리락 흔들리고 있었다.



- 내가 이 모임을 계속 해야 할까? 나를 소중히 여겨주지도 않는데 뭐. 내가 빠지면 여섯이니까, 어딜 가도 더 낫겠네. 어차피 자주 만날 수도 없고 내가 도움받을 일도 별로 없잖아?


- 네가 처음 그곳에 갔었을 때를 생각해 봐. 그들이 너를 얼마나 잘 돌봐주었니? 그래서 별탈 없이 타향살이를 잘 견뎌내었잖아. 자주 안 만나긴 했지만, 그래도 40년이나 된 모임인데 그것도 첫 직장에서 말이야, 그런데 모임을 깨려고?


- 왜 이럴까? 어쩌면 날씨 탓인지도 몰라. 계절이 바뀌고 있잖아. 그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건지도 모르지. 나이가 들면서 몸만 아니라 마음에도 점점 더 쉬이 감기가 오는 거 아닐까? 호르몬 탓, 기질 탓인지도 모르지. 별일 아닌 걸 괜히 혼자서 이리저리 머리 굴리고 있잖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화가 났다. 내가 이렇게까지 영향을 받고 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나는 무시했던 단톡방을 열었다.


‘제가 의사표시를 하기도 전에 날짜가 결정되었네요. 저는 그날 참가할 수 없습니다. 다들 즐거운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나는 글을 띄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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