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지 40년이 되는 직장 모임을 위해 용산역으로 나갔다. 열차 시간에 맞추어 가보니 둘째 언니 린은 나보다 30분이나 일찍 와 있었다. 게다가 언니는 커피까지 사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임 날짜 건으로 서운했던 린 언니에 대한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우리는 부지런히 춘천행 ITX에 올라 7번 칸에 앉았다.
“교장쌤의 행복학교는 잘 되고 있어요?”
나의 질문에 언니는 행복한 미소를 띄며 얘기를 이어 나갔다. 향기 테라피며 글쓰기 나눔이며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2회의 행복학교를 기쁘게 마쳤단다. 모임에 참가한 사람 중에 나비를 채집한 사람이 있었는데 구청에서 전시회를 해서 사람들이 성황리에 모였다고. 거기에 행복학교 사람들이 봉사활동을 나갔다고 한다.
처음 만나는 데도, 타인의 소질이 피어나도록 돕는, 직업도 나이도 다양한 사람들, 그걸 가능하게 하는 언니의 힘은 어디서 올까?
언제나처럼 언니는 수입과 지출을 생각지 않고 먼저 밥을 사고 함께 차를 마시며 풍부한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그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도록 이끌면서 가슴에서 꿈꾸었던 얘기들을 나누는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도록 언니는 모든 것을 퍼줄 것이다. 린언니의 마지막 멘트가 압권이었다.
“그러다 보니, 적자였어!”
남춘천역에 도착하니, 큰 언니인 진언니와 무아 언니가 와있었다. 넷이서 택시를 타고 봉봉 중학교로 향했다. 봉봉 중학교 아이들이 하교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나가면서 펄쩍 뛰기도 하고 친구와 웃으며 재잘대는 게, 건강한 병아리들이 먹을 거 찾으러 종종대고 나가는 것 같다.
오랜만에 아이들의 생생한 에너지를 느끼며 옥언니를 기다렸다. 드디어 옥언니가 차를 몰고 들어왔다. 약과집 사장이 예약주문을 깜박 놓쳐서 챙기느라 시간이 갔다고 한다. 린언니는 약과에 붙일 문구도 프린트해 왔다.
<봉봉 중학교 선생님, 우리 예쁜 주 교감샘을 사랑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동그라미 일동>
감동을 주는 섬세함이라니! 나는 박하사탕을 먹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주교감이 오기 전에 몰래 처리하려고 좁은 차 안에 들어가서 선생님들께 드릴 약과 선물세트마다 얼른 문구를 붙였다.
약속된 4시가 되었다. 모임의 막내인, 주 교감이 교장샘과 같이 마중 나와 있었다. 언제나 도착할까, 고개를 빼고 기다렸다 한다. 모두 함께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주교감의 집무실을 구경했다. 교감선생의 책상은 휴게실과 비슷하게 따로난 공간인데, 업무 집과 몇 권의 책들로 차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교장의 배려로 넓은 교장실로 가서 앉았다. 교장은 냉장고에서 비타민C 한 병씩을 꺼내 우리에게 주었다. 린 언니는 세 번째 학교서 교장과 같이 근무했다한다. 그렇다고 해도 30년이 넘어 만나는 사이라, 나라면 할 말이 없어 낯설텐데, 두 사람의 대화는 물 흐르듯 거침이 없다. 역시 마당발 린언니답다. 진언니와 옥언니는 춘천에 오래 있었고 무아 언니는 남편이 같은 과라 서로 아는 얘기들이 있어서, 대화에 자연스럽게 참여하지만, 할 말이 없는 나는 얼른 나갔으면 싶었다.
5시가 다 되어 함께 닭갈비를 먹으려 차를 나눠타고 산촌닭갈비로 향했다. 네비에 뜨지 않아 진언니의 기억에 의존하며 차는 움직이고 있었다.
“이쯤이 맞아,”
진언니의 말에 옥언니는 좌회전을 했고 들어가 보니, 산속닭갈비였다. 주가 한번 왔던 곳이라, 이름이 헷갈렸던 거다. 하기야 나는 아예 그 이름이 떠오르지도 않았을 거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나는 무의미한 이름을 아예 까먹고 있으니까.
그곳은 산골처럼 아늑하고 넓은 공간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다만 춘천의 명동에서처럼 동그란 불판이 아니라 사각진 식탁에서 구워지는 요리였다. 나는 추억이 떠올라 린언니에게 말했다.
“예전에 명동에서는 동그란 철판에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고 그곳에 닭갈비를 투척했어요. 언니랑 닭갈비를 먹고 쉐르담에 갔었던 기억이 나요. 10월이 마지막 날이었지요. 그때 춘천 골목에는 넓적한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뒹굴어서 밤길에 차며 걸었던 것같아요. 막걸리에 얼큰해져가지고는.”
“그래, 그때 정이 초록색 겨울코트를 쉐르담에서 샀었지?”
언니가 추천해주었던 쉐르담 코트는 내가 좋아하는 초록빛이었다. 다만 어깨가 너무 과장된 디스코 패션이었기에, 20여년 세월이 흐르고서는 버려야만 했다. 버린 지도 20년이 되어가니까, 또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그 옛날의 닭갈비처럼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름 대신 물을 살짝 붓고 거기에 익혀내기 때문이 아니라, 1980년대에 비해 그동안 너무 맛있는 것에 익숙해진 탓이 아닐까? 그렇지만, 주인아주머니는 정성을 다해 서빙 해주셨다. 직접 고기를 구워주실 뿐 아니라 반찬이 떨어지기 무섭게 채워주신다. 이 넓은 홀을 사람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은 저런 아주머니의 정성 때문이겠지?
간만의 모임인지라, 여섯 사람이 서로 신변 얘기를 주고받느라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새로이 교감으로 부임한 주교감의 근황이 궁금해서 발령받은 소감이 어떤지 물어봤다.
“재밌어요! 이번에 우리 세 사람,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모두 새로 부임해 왔거든요, 무슨 일이든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의논해요. 어떻게 처리할지를. 그러니까 그런지 재밌어요!”
나는 주의 응답이 참 반가웠다. 그래, 김정은도 무서워하는 중학생들을 그것도 30학급이나 되면 이일 저일 다 터질텐데. 게다가 중심가 잘 사는 동네라 학부모들의 입김도 장난이 아닐텐데. 신빙 교감으로 발령받고 와서 재밌다고 말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론 참 신기했다. 예전 같으면 내가 질투를 느끼고 있었을 텐데. ‘나도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는데 왜 나는 관운이 없어서 저 자리에 못 갔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냥 반갑다! 참 좋다..... 이젠 정말 나도 익어가는 건가? 나에게도 가을이 제대로 왔구나. 정말로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그때 마침 린 언니가 건배 제의를 했다.
“<당신 멋져>라고 합시다. 당당하고 신나고 멋지게 져주자!”
내 입꼬리가 바싹 위로 올라갔다. 역시,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당신 멋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