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스 팻말이 외쳤다

by 비바리우다

지하철 안은 조용했었다. 그런데, 차량을 연결하는 통로 문이 열리고 70대로 보이는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가슴 앞에 팻말을 들고서, 내 앞을 스쳐 지나며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떠들어 댔다. 아,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인가?’ 싶었는데 곧이어 중국인이 어떻고 나라가 다 망하고 등등의 얘기가 이어졌다. 나와 좀 떨어진 위치라 자세한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5분 이상 계속 주저리주저리 읊어대는데 듣기가 정말 싫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조용히 해주세요!”
그 근처에 있던 나이 지긋한 여성이었다.

그 말에 미세스 팻말이 외쳤다.

“이렇게 나라가 다 망해가는데, 중국인들은 넘쳐 오는데, 이 나라를 다 망해 먹으려는데, 어떻게 가만히 앉아들 있냐?”

그녀의 부릅뜬 눈에 쌍심지가 켜졌고 사명감에 찬 어조가 부르르 떨렸다.

그러자, 노년 여성도 나라가 왜 망하냐? 중국인이 무슨 짓을 했냐? 그런 얘길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시끄러우니 딴 데 가라고 한다.

“야, 너는 나라가 중하지도 않아?”
미세스 팻말이 소리 질렀다.

“나라가 뭐 어쨌다구? 왜 반말이야?”
노년 여성도 지지 않는다. 설왕설래 독화살이 오가고 있는 상황, 좀 있으면 머리끄댕이라도 잡을 것 같다.

미세스 팻말이 다시 뭐라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시끄러워요. 조용히 하세요!”


아까부터, 속은 부글거리는데 차마 말을 못하고 있었다. ‘좀 있으면 가겠지, 똥이 무서워 피하나.....내가 참자.’하며 애써 나를 달래던 마음이 터져버린 것이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시끄럽다고 응수해 주었다. 그러자 미세스 팻말은 은근슬쩍 움직이더니, 멀지 않은 곳으로 가서 또 일방 설교(?)를 시작한다.

다른 아저씨가 또 타박을 한다.
“거 시끄러우니, 조용히 좀 하세요!”


그러나 미세스 팻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전보다 목소리 톤이 낮아졌고, 남자는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지만 물러서진 않는다. 또 도돌이표로 설전(舌戰)이 이어진다. 그 꼴을 보며 전철에서 내렸다.

걸으며 드는 생각이 이랬다.
<그녀는 정말 불굴의 한국인이다. 어디서 저런 용기가 생겼을까? 마치 지하철에서 순교라도 하겠다는 심사 같다. 그런 굉장한 믿음에서가 아니라면 저렇게까지는 못 할 터인데, 누가 저렇게 만들었을까? 하나님이라고 얘기하는 걸 보면, 어떤 목사에게 세뇌당한 것 같다. 평범한 할머니는 용사로 키우는 목사라....., 그 목사는 무슨 생각을 하며 기도하는 걸까? 사랑과 믿음과 증오가 한데 어우러져서 설교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욱’했을까?

지칠 줄 모르고 외쳐대는 여자가 싫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면서도, ‘중국인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증오를 세뇌시키는 목사는 더 싫었다. 그런 목사가 눈앞에 있는 듯, 나는 그에 대한 반감과 로봇처럼 반복적으로 앵앵거리는 그 여자의 소리를 단번에 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거다. 그 욕구를 참아내지 못하고 용수철 튀듯이 소리를 지른 것이다. ‘인간은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법을 배워야 고상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고 니체는 말했는데, 나는 그럴 수 없었던 거다.

아직도 제어가 덜 되는 내가 부족한 사람인 걸까? 그럴 때 뭐라고 말해주는 것이, 오히려 용기 있는 행동은 아닐까? 그런데 욱하고 터져 나오는 건 용기와는 다른 것인가?
게다가 그녀가 중국인을 증오하는 것처럼 그 당시 나도 그녀와 목사의 소리를 꺼버리고 싶도록 증오했다는 사실. 그러니, 우린 서로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또한 사랑의 하느님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때 내가 <시끄러워요!> 했던 것이 아직도 후회되지 않는다. 그랬던 나를 책망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그럴 때는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그건 나의 용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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