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의 오랜 친구는 아니다.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통해서 만난 사이니까 햇수로는 6년째이지만 개인적으로 본 것은 4번 정도밖에 안 된다. 어쩌면 나이가 같고, 신앙이 같아서 쉽게 마음을 터놓았을 수 있다. 명절이어도 어른들이 다 돌아가셔서 나는 어디 갈 데도 없었다. 그래서 같은 동네라 혼자 사는 그녀에게 전화했을 뿐이다.
“오틸리아, 어떻게 지내? 추석이 긴데 시간 있어?”
“그래 정아, 우리 만날까? 동생네 집에 갔다 온 후에 전화할게”.
그렇게 해서 우리는 중앙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도로를 따라 신호 등을 건너며, 중앙공원을 바라다보니, 공원 샛길에 누군가 서 있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긴가민가하는데 그녀가 손을 흔들며 내게로 다가왔다. 그녀는 황급히 나를 다른 쪽으로 이끈다.
“왜 마스크를 썼어? 감기 걸렸어?”
“이쪽은 내가 다니던 미용실과 가까워 아는 사람이 많아. 나는 아직 미용실에서 내 가위며 소품들을 챙겨오지도 않았어. 주인은 아직도 내가 돌아온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녀는 왜 미용실 사람들을 피하는 걸까? 물어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외쳤다.
“어?~ 얼굴이 창백하네. 무슨 일 있었어?”
걸으며 그녀가 말하기 시작했다. 자주 가던 가정의학과에서 건강검진을 했는데 담낭에 용종이 있었단다. 크기가 작아서 6개월마다 지켜보자는 얘기였는데 그다음 6개월 후에 갔더니 그게 갑자기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의사는 미안하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간 것이 작년 12월 말이고 올 초에 검사를 해보니, 담낭에만 암이 생긴 게 아니라 다른 기관에도 있더란다. 전이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3곳에서 생겨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복부 가운데 부분 위에서 배꼽 아래까지 ㄴ자로 커다란 흉터가 날 만큼 대 수술을 했다고 한다.
남들은 신나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며 희망에 부풀어 있을 그때, 병원에 누워 혼자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부모님을 돌아가시고 자매만 있으니 도움받을 데도 마땅찮은 그녀다. 게다가 미용사를 하며 생활해 왔던 그녀가, 일도 못 하는데 수술이며 간병비는 어떻게 조달했을까? 지금도 여전히 쉬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묻지 않았다. 도와주지 않으면서 공연히 오지랖만 떠는 것 같아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복지가 잘 되어서, 암 환자는 MRI 같은 검사비나 항암제 같은 약값도 10% 이내로 든다고 한다.
조금 걷다가 그녀가 벤치에 앉자고 했다. 그녀가 피곤한가 싶어서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는 손수 만든 쌍화차와 과자를 꺼내었다.
“어머나, 정성스레 끓인 쌍화차구나.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만나러 왔는데!”
멋쩍어하는 내게 그녀는 싱끗 웃으며 과자를 내 앞으로 밀어준다.
“이건 아무것도 아냐. 늘상 집에서 끓여 먹는데 뭐.”
“ㅎㅎ 나는 오늘 오랜만에 자기랑 여기 한 바퀴 돈 다음 생맥주 한잔하러 가려 했는데. 기억나? 우리 호스피스 봉사 끝내고 모두 함께 생맥주 마시러 갔었잖아. 그래서 사람들을 알게 됐고 자기랑도 친해졌지.”
웃으며 내가 말했더니 그녀가 담담하게 말을 받는다.
“그래 그땐 그랬지. 벌써 6년이 되어간다. 코로나가 오면서 뿔뿔이 흩어져버렸지만.”
‘이젠 오틸리아와 맥주 마시는 것도 어렵겠구나.’ 생각하며 쓸쓸한 마음을 털어내고 있는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이었다. 수술보다 항암제를 맞는 것이 훨씬 어렵다고. 처음엔 발을 끌다시피 걸었단다. 그나마 자주 걷기 운동을 하면서 지금은 걸을 만하다고 했다. 그녀는 요양병원에서 만난 75세 언니와 자주 함께 걸으며 기운을 북돋는단다. 요양병원에는 암 환자들이 많아서 그들끼리 관련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고, 서로 심리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 같다.
그녀의 긴 얘기 끝에 내가 말했다.
“그러게. 늙어가는 것도 처음 겪는 일이잖아~. 낯설고 힘든 일이 많은 것 같아. 그런데도 혼자서 잘 이겨내고 있으니, 장하다!”
6년 전에는 그녀도 나도 그렇게 암에 걸리리라고 상상해 보지 못했는데 그녀에겐 현실이 되었다. 나는 언제일까? 언젠가는 그럴 때가 오겠지. 그런 처지가 되면 나는 어떤 태도로 맞이하게 될까?
그녀는 투병 중인 지금도 계속 봉사활동을 나가고 있다. 살던 방식 그대로 계속 살아 나가는 게 중요하단다. 나도 그녀처럼 암 수술을 하고 나서, 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병동에 봉사를 나가고 담담하게 살아 나갈 수 있을까?
날이 흐리다. 마음이 우울해지고 있다. 그녀는 괜찮을까? 만나면 나보다 얘기가 많으니까 어쩌면 혼자서도 잘 지내지 않을까? 담에 만나선 고기를 사줘야지. 단백질이 많이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함께 고기를 먹어야지. 이런저런 생각이 불빛처럼 흔들거린다. 까맣게 어둠이 내렸다. 창밖을 보다 문득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저 불빛 어디선가는 새 생명이 태어나고 어디에선가는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아는 친구가 담당암 수술을 받았대.....여전히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나가고 있어.
그게 삶의 활력소가 된대. 누구든 모르는 일이니,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기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