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메.아.리

by 비바리우다

안내자의 신호에 따라 무대 뒤편에 섰다. 은근히 긴장된 순간, 팀원들의 얼굴을 쳐다보니 그들도 상기되어 있다. 그렇지. 나만 긴장한 건, 아니지? 그러다 공연하는 팀으로 얼굴을 돌렸다.


훌라춤을 추고 있다. 뒤에서는 춤을 추는 아줌마들의 발만 보인다. 매끄럽게 움직여지는 발들이 황홀하기까지 하다. 훌라춤을 배워도 좋겠네. 어릴 적 크리스마스 무대에서 춤추기 위하여 붉은 크레파스를 입술에 칠하고서 ‘스스’ 거리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떨리면서도 참 행복했었지.


이런저런 생각이 흐르는 사이, “다음은 기타 동아리입니다.” 하는 사회자의 멘트가 들려왔다. 선생님이 정해준 순서대로 세 번째에 내가 입장을 했다.


‘어? 내가 가장 센터네. 어떡하지? 나는 잘 치는 사람이 아닌데!’

그 상황에서 바꿔 달랄 수도 없고 엉거주춤 앉았다. 반장님의 멘트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푸른 언덕에~ 배낭을 매고~ ”


쉬운 곡인 데다 익히 연습한 터라, 내 딴에는 자신감 있는 척 웃음을 띠고, 악보 대신 관중들과 열심히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다.

“~ 여행을 떠나요.”

그러다 다음 순간, “메. 아. 리.” 주춤...... ‘아차, 벌써 2절이구나!’


잠깐 침묵해야 할 사이를 잊어버리고 나 혼자서 <메. 아. 리>라고 불렀던 것이다. 2절에서는 <메. 아. 리> 대신 조용히 있다가 손으로 탁탁 기타 통을 두드리기로 약속했는데 관중을 보다가 혼자만 튄 거였다.


‘이런, 침묵할 순간에 그런 중대한 실수를 하다니! 어떡하지. 바보같으니라구, 정신 차려..... 그런 생각들로 속이 타들어 갔다. 그래도 연습을 꽤 많이 하지 않았어? 그런데도 실수하다니! 나이가 들어 바보가 돼가는 거야?, 도대체 정신 줄은 어디다 놓고 다니는 거니?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연습을 하나마나 아냐? 으이구, 등신아.....’


그렇게 자책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다행히 다음 노래는 코드가 쉬워서 쉽게 잘 끝났다. 마지막 곡은 시작 부분부터 까다롭다. 게다가 원래 연습보다 빠르게 진행돼서 진땀이 흘렀지만, 기타 줄에 온 정신을 집중해서 그럭저럭 마무리가 잘 되었다.


우리 공연이 끝났다. 무대에서 퇴장하면서 다들 만족스럽게 서로 애썼다고 축하 인사를 나눈다. 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은 술 먹은 사람마냥 혼자 벌게진 듯하다.


“에고, 제가 좀 틀렸네요!”

지도 선생님께 이실직고하였다.

“괜찮아요. 잘 들리지 않던걸요. 다른 사람들도 못 들었을 거예요.”


나는 속으로 이미 끝났으니, 선생님이 나 듣기 좋으라고 위로하나보다 생각했다. 그때 내 기타 짝꿍의 딸이 꽃다발을 들고 축하해주기 위해 다가왔다.

“아하, 소령이시라면서요? 멋지다~ 대단하세요!”


짝꿍에게서 그녀의 딸이 소령이라는 걸 들었던 터라 나는 짝꿍을 위해 겉으로는 웃으며 립서비스를 했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내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여전히 씁쓸하게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들이 가고 무대에서 흩어져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익숙한 얼굴이 다가온다. 남편이었다.


“축하해! 애썼어요~”

빨간 장미와 카네이션이 조화를 이룬 예쁜 꽃다발을 내게 내민다.

“어? 당신이 어떻게?”


아침에 딸이 말한 게 남편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꽃다발을 받았음에도 내 마음은 떨떠름한 상태가 이어졌다. 같은 팀원들과 아무렇지 않은 척, 나머지 공연을 지켜보면서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왔다. 공연 동영상이 카톡방에 띄워져 있었다. 틀어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내가 실수한 부분이 어떻게 비치는지 궁금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동영상을 틀었다.


“여행을 떠나요~ ” (짠!; 내가 기타를 내려치는 소리)


어? <메. 아. 리.>가 들리지 않는다. 볼륨을 크게 해도 기타를 내려치는 소리는 나지만, <메. 아. 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아하, 남들 눈치를 보며 내가 소리를 아주 작게 낸 건가? 그게 녹음이 안 되었구나. 다른 사람들도 못 들었겠네. 게다가 짠하고 기타 내려치는 것이 다행히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서 나의 실수임을 관중들은 잘 모를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길게 나왔다. 혼자 맘속으로 자맥질을 해대던 내가 생각나 피식거렸다. 그제야 나는 꽃다발을 꽂으면서 남편에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여보, 꽃다발이 정말로 예쁘네. 고마워요.”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나는 남의 평가에 대해서 민감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는 나이가 들면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모든 것들을 품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나이에 따라 저절로 그렇게 변하는 줄 알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렇다!

안 되겠다. 이젠 달라져야지. 나도 이 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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