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c블록 7열 5번

by 비바리우다

2층 c블록 7열 5번. 이것은 내가 라트라비아타를 보러 가서 앉은 자리 번호이다. 인생 처음으로 남편이 먼저 공연을 보러 가자고 해서 앉은 좌석,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의미가 깊다.


“내일 오페라나 보러갈까?”

예기치 않던 순간에 남편이 말하는 느닷없는 소리에 깜짝 놀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어쩐 일이야? 당신이 오페라를 다 보러 가자고 하고.”


그렇게 응수하며 오페라를 보러 갔던 것이 벌써 4년 전이다. 그때는 어떤 일을 하느라 한참 바빠서 아무 생각이 없었던 때였는데, 알고 보니 내 생일 선물이었던 거다. 그날 우리는 예술의 전당에서 라트라비아타를 보고, 손잡고 걸어서 사당역으로 가서는 해산물 뷔페와 맥주를 즐겼던 것 같다.


그 생일 선물은 남편이 내게 선물했던 진주알 목걸이만큼이나 소중한 선물로 남아있다. 그런데, 오페라 선물을 받을 당시에는 의례적으로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서프라이즈한 표정으로 남편에게 감사를 전하진 못했나 보다. 그 후로 생일이 되어도 남편이 공연 선물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아뿔싸, 아깝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런 것이 기쁘고도 감사한 일들로 다가와 내 마음을 살살 흔들어 놓는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내가 진주를 좋아한다고 그걸로 결혼 예물을 해달라고 했을 때, 남편은 진주는 눈물이라고, 결혼 예물은 그런 걸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호주산 사파이어로 목걸이를 만들어줬었다. 그럼에도 내가 진주를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고서, 회사 일로 괌에 여행 갔을 때 알이 굵은 진주목걸이를 사다 줬었다. 그때도 활짝 웃는 얼굴로 남편을 안아주진 못했다. 전혀 예상을 못했는데도 말이다. 그저 대면대면한 얼굴로 보일락말락 웃으며 고맙다고 했을 뿐이었던 것 같다.


에구.....

서양 사람들은 감동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뜨거나 감탄사를 연발하며 작은 선물에도 감사를 표하거나 심지어 눈물까지 보이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하고 묵직한 울림으로 남아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서서히 내 가슴에서 올라와서, 파문을 일으키는 걸까? 생일 선물이 없어져서 그러는 걸까? 예기지 못한 기쁨이라는 것이 아쉬운 걸까?


이제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서로 생일 선물은 생략하는 편이다. 그저 생일을 기억해 주는 방편으로 상대방의 미역국을 끓이고 케잌 촛불이나 끄면서 조촐한 생일 축하로 대신 하곤 한다.


“생일이 뭐 별건가? 매 해마다 돌아오는 걸~”

내가 남편에게 생일 선물 뭐 해줄까? 라고 물으면, 으레히 남편이 건네는 답이다. 어쩌면 나보다 먼저 생일을 맞기에, 그다음에 나에게 해줄 선물이 부담되어 그러는 건지도 모른다.


급기야 올해는 남편 생일도 잊을 뻔했다. 음력 생일이라 달력에 표시해 놓곤 하는데, 가는 볼펜으로 써놓았더니 생일 전날까지 쓰여 있는지조차 까맣게 몰랐다. 나이 들면서 주의력이 떨어지니, 그것마저 잘 안 보인다고나 할까? 그제야 부랴부랴 소고기를 사다가 미역국을 끓이고 돼지갈비 김치찜으로 생일을 챙겼다.

이렇게 두리뭉수리해지는 것이 늙어가는 것이라면 늙음은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해야 할까? 아니면 둔감해진다고 슬퍼해야 할까?


생일 선물을 챙기고 싶어도 해마다 같은 시절에 돌아오니 옷 같은 것을 선물로 살 수도 없다. 그러고 보니 작고한 남동생 생각이 난다. 그 애는 겨울 생일이었는데 두꺼운 점퍼나 외투 같은 선물은 그만 받고 싶다고 몇 해 전부터 얘기했었다. 나중에 동생 장례를 치르고 옷장을 열어보니 유달리 겨울 점퍼가 많았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작은 소품들도 이제는 사는 것을 저어하게 된다. 늦가을 황혼의 들판은 비어 있음이 가리키듯, 우리도 서서히 물건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정갈한 생의 마침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편 생일에 딸이 선물했던 화려한 꽃다발은 버리기 아까워, 거꾸로 매달린 채 뒷 베란다 한쪽에서 마르고 있다. 덕분에 빨래를 걷을 때마다, 마른 장미를 쳐다보며 딸을 생각하고 맘속으로 기도한다.


이번 내 생일엔 내가 먼저 남편을 초대하리라. 내가 좋아하는 김광석의 노래들을 엮어 만든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을 보자고 말이다. 혹 누구에게든 선물을 받는다면 놀라워하며 감동적인 표정을 지을 수 있도록 미리 연습도 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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