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친구처럼 놀아주는 부모들을 보면, 그들이 경탄스럽다. 얼핏 옛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그때 그게 참 힘들었는데.....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아이의 정서는 저절로 잘 발달할 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게다가 출산 후부터 육아 책을 나름대로 읽었기에 나는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당시 동양적인 육아법을 주창하는 모 교수의 책을 읽고선, <아이가 버릇없게 크지 않으려면 엄하게 훈육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정서는 저절로 채워지니, 지능이나 언어 능력의 탁월해지도록 소위 똑똑한 아이를 만드는 교육만 하면 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는 무조건 일단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예뻐해 주는 것이 최고인데 말이다. 어리석게도!
가족끼리 여행을 가던 어느 날, 딸아이와 같이 차 뒷좌석에 앉아서 한참을 가야 했었다.
“로미야, 샌드위치 빵을 잘라 먹는 놀이를 할까?”
말을 하며 가위와 식빵을 꺼내 들었다. 나는 식빵으로 동그란 모양, 세모, 네모난 모양을 만들고서는 잘 한답시고 세 살 난 딸아이에게 하나씩 보여주었다.
“자, 이렇게 생긴 건 네모야, 네모는 스퀘어! 따라 해 봐”
그때 반응했던 아이의 말을 듣고서 속으로 흠칫했다.
“엄마, 또 공부놀이 하는 거야?”
요즘 엄마들도 아이가 기쁘게 흠뻑 빠져서 하는 놀이보다는, 나처럼 공부 잘하게 하는 놀이를 하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지 말아요, 그러지 말아요, 젊은 후배들이여! )
엄마가 키운 대로 아이가 자라는 것만은 아니지만, 정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우리 로미는 매우 이성적이다. 어려서 혼을 낼 때에도 늘 끝까지 이치를 따져가며 혼을 냈기에 지금은 나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잘 따진다. 그런 그녀를 볼 때마다 특히 비판의 화살이 내게로 돌아올 때마다 속이 쓰리다. 표현이 조금만 둥글었으면 싶을 때도 가차 없이 예리하다.
“엄마, 싫으면 싫다고 얘기해. 얼버무리지 말고. 억지로 하자는 건 아니잖아.”
우리가 어렸을 때는 부모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자식이 많았고 부모는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벌이에만도 바빠서, 자식을 돌볼 여유가 없던 때였다. 그러나 그때는 자연 속에서 뛰어놀았고 형제자매나 동네 친구들이 많아서 나는 정서적 안정을 그 속에서 채웠기에 힘든 줄 몰랐다. 그래서 부모가 되면서 내가 받고 싶었던, 학업에 대한 뒷받침을 자녀에게 채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공부에 더 심혈을 기울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와 보니, 로미는 내게서 정서적으로 충족될 만큼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로미는 나에게 터놓고 얘기하는 게 없었다. 나는 사춘기였을 때 힘들면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기도 했건만, 그녀는 전혀 내게 그런 식으로 의지하지 않았다.
어느 날 로미가 과외를 갔다 와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엄마는 민희 엄마처럼 가을이어도 나랑 같이 걸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아. 민희 엄마는 가을 단풍에 감탄하면서, 민희더러 저녁엔 산책가자더라.”
이제와서야 그런 게 후회된다. 가을이면 딸아이와 함께 가을에 젖어보고, 봄이면 따스한 양지를 찾아 함께 걸었으면 좋았을걸! 그녀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웬만해선, 내게 터놓는 법이 없다. 알아서 혼자 해결하고 나중에야 내가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좋게 얘기하면 독립적으로 잘 컸고, 나쁘게 말하면 나와 딸 사이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정립된 확실한 거리가 있다. 누구 집 딸처럼 매일 퇴근할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것은 기대조차 않지만, 가끔은 내가 전화 통화를 하자고 하기 전에 나에게 콧소리를 하면서 투정을 부려도 좋으련만.
서로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왜 이렇게 맹숭맹숭한 사이가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나는 나로서 존재할 시간도 필요했다. 그 사이에서 줄다리기는 늘 내 몫이었다. 남편도 직장도 그 누구도 배려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사는 것은 늘 전투를 치르듯이 하루하루 치열해야 했고 긴장 속에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와 잘 놀 수 없었다. 아이와 눈높이에 맞추어 놀아주는 것은 내겐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게 내 놀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돌아보며 후회해 본들 소용없겠지만, 그래도 한번은 짚고 넘어가는 게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어떤 엄마였을까?’
열심히 사는 엄마. 그래서 자식에게도 똑바로 살기를 요구하는 엄마, 자기 기준이 확실한 엄마, 어쩌면 가까이 다가가서 아무거나 터놓기에는 힘든 엄마였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더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나는 독립적으로 잘 살아내야겠다. 자식에게 기대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