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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Aug 06. 2021

아버지는 금 이빨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금 이빨을 하고 있었다. 어금니에 금이 씌워져 있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을 때는 금 이빨이 보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말하였다.


  “사라야, 번개 치고 나믄 벼락이 떨어지는디, 쇠붙이가 이신 디로 떨어진다.”

    (번개 치고 나면 벼락이 떨어지는데 쇠붙이가 있는 데로 떨어진다.)

  “아버지 이빨도 쇠붙이 아니 꽈?”

   (아버지 이빨도 쇠붙이 아니에요?)

  아버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비가 올 것 같았다. 아버지는 마루에 누워 계셨다. 누워있는 아버지를 본 언니는 가슴이 움츠러들었다. 아빠가 분명 큰 대자로 누워있으면 벼락 맞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비가 후두둑 떨어지고 번개가 번쩍거리자 언니는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몸을 옆으로 돌아 누이려고 애를 썼다.  

   

 “아버지 큰일나컨 게, 벼락 떨어집니다”

  (아버지 큰일 나겠어요. 벼락 떨어집니다)    


  옆으로 돌아누울 것 같던 아버지가 다시 큰 대자로 돌렸다. 그 순간 아버지는 웃으시며 ‘앙’하고 큰 소리를 냈다. 금 이빨이 번쩍였다. 아버지는 셋째 언니를 골려주고 싶었나 보다.

  “안됩니다. 벼락 맞아마씨. 입 닫읍 써.”

   (안돼요. 벼락 맞아요. 입 닫으세요.)    


언니는 아버지 배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아버지의 턱을 당겨 입을 옹 다물게 했다. 그러나 짓궂은 아버지의 놀림은 계속됐다. 다시 ‘앙’ 하고 소리를 내면 사라 언니는 울면서 조막손같이 두 손을 올려서 입을 다물게 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언니의 기억이다. 그날 셋째 언니의 기억은 매우 특별했다고 한다.     


  내 나이 여섯 살에 아버지는 돈을 벌려고 일본으로 밀항을 했다. 아버지의 자취를 느낄 수가 없게 되자 언니들은 자신의 기억 속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돌아가며 아이스크림을 핥듯이 아버지와의 추억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 나는 언니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아버지의 얘기를 들음으로써 그 존재감과 그리움을 대신하곤 하였다.

  그러다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막연하게 꿈꾸던 아버지가 중늙은이로 되돌아왔을 때, 정작 나는 실망만 하게 되었다. 이미 커버린 탓인지 아버지와의 소소한 애정이 쌓이지 않았다. 아버지만 돌아오면, 그저 다 같이 모이기만 하면 행복하게 잘 살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어려서 함께 한 경험이라고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 나와 동생은 아버지가 그냥 불편했다. 우리는 서로 서먹한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오랫동안 일본에서 불법 체류자로 맘 졸이며 사셨던 아버지는 가족들이 다 당신을 잘 받아 들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았다. 하지만 나나 동생은 아버지의 행동이 낯설었고 깐깐하게 구는 모습이 싫어서 은근히 피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돌아올 때 아들과 함께하려고 장만했던 멋진 유도복을, 아버지는 포기해야만 했다. 남동생이 늦게 들어오던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버지는 양은 주전자를 어머니 팔에 패대기쳤다. 팔이 부은 어머니는 울상이 되어 1층으로 내려오셨고 나는 아버지를 증오하게 되었다. 


  대학교 4학년 늦가을에 나는 아르바이트비를 받아 식빵 한 줄을 사 들고 집으로 갔다. 담관암인 아버지는 먹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얼굴이 누런 아버지가 침대에 누워있다. 아버지 배에는 소변 줄이 꼽혔고 침대 아래의 링겔 병으로 노란 오줌이 방울져 들어간다. 벌써 반쯤 차 있다. 붉은 오렌지 빛이다.

  어머니가 기도를 하자고 말씀하셨다. 침대 앞에 무릎을 꿇고 나와 남동생 그리고 어머니 셋이서 나란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성모송을 읊을 차례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 ...... 다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어머니 기도 소리가 불경을 외우듯, 노래를 하듯 콧소리가 섞인다. 참다가 갑자기 웃음이 쿡 나온다. 

  “집어치와”

  노한 아버지가 단 칼을 내리치듯 소리쳤다.    



  아버지가 붉은 담요를 쓰고 침대에 누워있다. 얼굴은 누렇다 못해 흑갈색이다. 당신 몸이 몹시 괴로운지 입이 말라 있다. 벌어진 아버지의 입에서 썩은 냄새가 났다. 젊은 날에 빛나던 캄프라치 금 이빨(일본식 외래어, 보철 이빨을 그렇게 불렀었다)이 얼핏 반짝였다.    

 

  “아이고 아프다. 아이고 아프다. 나 병원 데려다 도라”     


  아버지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계속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그날 낮에 이시돌 병원의 의사인 수녀님이 다녀갔다. 그분이 ‘오늘 종명하십니다.’라고 했던 게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서울에 있는 언니 가족도 내려왔고 신부님인 사촌 오빠들도 함께했다. 병원으로 모셔 간다고, 말만 할 뿐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당시만 하더라도 집 밖에서 죽으면 흉상(凶喪)이라 여기던 때다. 


  큰 신부님을 중심으로 기도가 시작되었다. 큰 신부님이 선 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후 창으로 이어졌다. 기도하는 가운데 고통을 호소하는 아버지의 신음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사그라질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사람들이 참 독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죽어가는 아버지의 두 발을 붙잡고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튼튼했던 발목이 가늘고 맥이 없다. 핏기가 사라진 누렇게 뜬 두 발이 서서히 식어갔다. ‘아버지가 이렇게 떠나시는 구나’ 생각하니 불쌍해서 가슴이 메었다. 가지 말라고 속으로 대뇌며 두 발만 꼭 잡았다.   


  

  이제는 나도 잇몸이 들뜨고 시리다. 앉은 자리에서 오징어 두 마리를 구워 끝장을 내고도 생생했던 내 이빨은 어디 갔는지, 오징어는커녕 콩나물도 이빨 사이에 끼고 있다. 늙어가는 것이다.


  철없는 딸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저 아이도 내 죽기 전에 부모의 소중함을 정말로 알 수 있을까?

  식어가는 아버지의 귀에 대고 하고 싶었던, 그러나 끝내 못했던 말이 있다. “아버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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