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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Nov 27. 2021

엿 한봉지

  “야~ 찐빵 사 먹으러 가사 켜!(가야겠다)”     


  정실이가 찐빵 봉지와 가방을 들고 학교 울타리 담을 넘어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순간, 남학생들이 창문에 대고 소리를 질러댔다. 남학생반 짓궂은 애들이 함께 몰려있다가 일제히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러자 나머지 학생들도 무슨 재미있는 구경이나 생긴 것처럼 창문에 몰려들어 소란해졌다. 학교 안을 순찰하시던 주번 선생님은 교무실로 종종걸음을 옮겼고 그런 분위기에 이끌려 나도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정실이가 냅다 교실로 달려오고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가 소리쳤다.     


  “얘들아, 담임선생님이 가방 검사한대!”     


  내 가슴이 ‘쿵’하고 무너졌다. 엿 한 봉지가 내 가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교실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나는 얼른 교단 안으로 엿 봉지를 밀어 넣었다. 칠판 아래에 깔린 교단은 널따란 나무 단상으로 무게가 제법 무거웠으나, 낡아서 들썩거리는 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날카로운 콧날만큼 강단이 있었던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다.     

  “지금부터 가방 검사한다. 자신의 물건들을 모두 책상 위에다 놓아라”   

   

  그날은 시작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선생님이 지시에 따라 우리는 가방 속의 물건들을 책상 위로 얹어 놓았다. 책상 속에 있던 책과 공책마저 모두 쌓았다. 선생님은 가방과 책상 검사는 물론이고 교탁, 칠판 위 태극기와 급훈이 걸린 액자며 청소함 등 구석진 곳까지 샅샅이 다 뒤졌다. 정실의 빵 봉지는 미처 숨기지도 못한 채 향기 좋은 빵 냄새를 풍기며 교탁 위에 얹어졌다. 태극기 사진과 급훈 뒤에서는 희자의 엿 봉지가 하나씩 튀어 나왔다. 


  검사를 끝낸 선생님이 두 발을 벌리고 교단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내 가슴은 쿵덕쿵덕 북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차마 교단은 생각을 못 하셨는지 정실의 빵과 희자의 엿을 들고 "이거 임자들은 따라와" 하시며 사라져갔다.     


  1970년대에는 가게에서 파는 간식거리로 건빵이나 엿 라면땅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중 우리가 교실에서 주로 먹었던 간식은 비닐종이에 싼 갈색의 엿이었다. 길이 4cm 정도의 뭉툭한 엿은 네모꼴로 모양이 투박하였는데 싸고 달았으며 먹으면 어느 정도 포만감이 있어서 모두 좋아했다. 


  중 3은 돌도 씹어먹으면 소화를 한다고 말할 만큼 먹성이 한 참 좋은 때다. 그런데 작은 시골 학교라 교내에는 매점이 없었고 쉬는 시간에도 사 먹으러 나갈 수가 없었다. 허락받고 외출하는 것이 규칙이기도 했지만, 교문에서 큰길까지는 200m 넘게 떨어져 있어서 나가기도 불편했다. 


  어쩌다 정실이가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정실이는 학교 오는 길에 엿을 봉지째 사 와서 팔았다. 이문이 남자 정실이의 엿 봉지는 늘어났다. 정실이와 친한 희자도 솔깃해서 같이 엿을 팔게 되었다. 그것을 본 나도 흑심이 생겼다. 


  용돈이라고 없던 내게 장학금을 받았다고 어머니가 준 500원이 있었다. 500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엿 한 봉지였고 한 개에 30원씩 받고 팔면 원금하고도 네, 다섯 개의 엿값이 남았다. 엿 한 봉지를 사서 나도 교실에서 봉지를 꺼내었다. 엿 봉지를 본 친구들이 엿을 사 갔다. 원금을 건지고도 남은 엿에 마음이 흡족해졌다. 드디어 나는 공짜로 간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교실에 있으면 손님이 알아서 엿을 사가니까 장사가 아주 수월했다. 나는 그저 학교 갈 때마다 엿 한 봉지씩 사가면 그만이었다. 


  우리들의 장사는 아주 잘 되어서 각자 하루도 공치는 날 없이 다 팔았다. 그러다 정실이가 욕심이 생겼나 보다. 용돈을 더 벌 생각에 장사 품목을 엿에서 찐빵까지 넓혔다. 문제는 찐빵이 나오는 시간. 따끈하고 말랑한 찐빵을 사려면 아침 등교 전에 찐빵집에 들러야만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늦게야 찐빵이 나오는 바람에 정실이가 지각했다. 정문에는 늘 선도부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정문으로 못 오게 된 정실이가 생각한 것은, 마을에 인접한 학교 울타리 쪽으로 돌아가서 돌담을 넘는 거였다. 그 돌담은 각 교실의 유리창에서 바라다보이는 곳에 있었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던 정실이가 대담하게 학교 운동장 울타리를 넘다가 남학생들에게 그 모습을 들키고 말았던 것이다.     

 

  담임선생님의 뒤를 따라서 정실이와 희자가 울상을 지으며 교무실로 향했다. 그러자 반 친구들은 막 벌어졌던 대대적인 검사를 얘기하느라 쑤군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냐? 쟤네들 오늘 벌깨나 설 것 같은데...... 모든 선생님들이 회의하는 도중에 딱 걸린 것 같아”


  반장의 소리에 목에 뭔가 탁 걸렸다. 어떡하지? 교무실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도 같이 벌 받아야 되는 거 아닐까? 나도 엿 파는 것을 애들이 아는데 ...... 모두들 내 얘길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렇지만 평소에 청소도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으로 칭찬받던 내가 선생님 앞에 나설 수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차마 엿을 들고 교무실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책을 쳐다보는 척하면서도 마음은 쪼그라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불려갔던 두 친구가 눈물에 젖어서 돌아왔다. 빵도 엿도 없는 채로. 다가가서 뭐라 말하고 싶었으나 내 책상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나는 종일 책상에 붙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정실이와 희자가 교실을 나설 때야 나도 뒤따라 나섰다. 눈치를 보다가 두 친구에게 나만 빠져서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정실이가 웃으며 교무실 사건을 얘기해주었다.


  두려움에 떨던 두 친구가 선생님께 불려갔을 때, 선생님은 대뜸 ‘너희들 집이 그렇게 어려우냐?’ 하면서 위로의 말을 하는 통에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게다가 담임선생님은 그 찐빵과 엿을 사서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께 돌렸다고 했다. 그러니까 두 친구는 선생님께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말을 마치면서 정실이가 외쳤다.     


  “우리 다시는 교실에서 장사하지 말자”    


  깔깔거리는 정실이와 희자를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러나 나는 해묵은 메주의 곰팡이를 다 닦아 내지 못한 기분이었다. 친구들은 오늘 내가 엿 한 봉지를 교단에 숨겼단 사실을 알았을까? 남몰래 교단에서 꺼내든 엿 한 봉지가 내 가방 속에 숨죽이고 있었다. 끝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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