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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Feb 05. 2021

살마 숙제

 4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고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막내 언니가 나보고 살마를 캐러 가자고 했다. 언니의 여름 숙제가 ‘살마 캐오기’였던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엔 늘 방학 숙제가 있었다. 해마다 여름 방학이면 곤충 채집을 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어쩌다 겨울엔 비료 푸대에 솔방울을 따가는 숙제도 했다. 어느 날 숙직실로 심부름 갔을 때, 솔방울이 잔뜩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고 우리의 숙제가 모이는 곳이 이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살마는 잡초의 열매였다. 밭 두둑이나 고랑에 나는 이름 모를 풀인데 이파리는 세모꼴이고 한두 장 정도 마주나는 거였다. 곧게 뻗은 가는 줄기를 따라 조심스럽게 호미를 긁어 보면, 뿌리 끝에 하얗고 동글동글한 알맹이가 달렸다. 그것이 약초로 쓰이는 살마였다. 


  당시 시골에는 약초를 모으는 허름한 가게가 있었다. 용돈이라고 없던 시절에 살마를 캐다가 팔면 제법 돈이 모이곤 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돈으로 사탕이나 엿 같은 간식을 사 먹었다. 

 그것 말고도 중요한 용돈 벌이는 지네를 잡는 거였다. 4월쯤 되면 잡초들이 잘 자랐고 그것들이 곡식의 싹을 덮기 전에 열심히 김을 매주어야 했다. 그래서 밭고랑에 앉아 김을 매다가 호미질을 하면 지네가 올라온다. 그러면 머리부터 잡는다. 그렇게 하면 지네가 무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잡은 지네는 유리병에 담아 뚜껑을 닫았다. 지네는 살마보다 값이 비쌌다.


  나는 잔뜩 주눅이 든 채로 언니를 따라 밭으로 갔다. 그 밭은 우리 집에서 꽤나 가까웠다. 안타깝게도 밭고랑에는 잡초들이 보이지 않았다. 살마는 더더욱 없었다. 밭고랑 하나를 훑고 또 하나를 건너도 마땅한 게 나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 우리는 밭을 샅샅이 헤매고 다녔지만 건진 것은 몇 개가 안 되었다. 어쩌면 살마를 캐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는지도 몰랐다. 살마는 보리밭에 김을 맬 때가 제 철이었던 것이다.


  언니는 밭고랑에서 햇볕을 받는 게 따가 왔는지 고랑에서 나와 동산에 올라앉았다. 나도 언니 눈치를 봐가며, 따라서 올라갔다. 언니가 억새 풀 위에 드러누웠다. 나도 그 옆에 누웠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갑자기 앙칼진 언니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일어나 봐 어쩔꺼냐? ”

숙제를 못하고 잠이 든 게 모두 내 탓인 듯이 언니는 화난 얼굴을 하고선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잘못 응대하다간 맞기나 한다. 이럴 땐 입을 다무는 게 상수다.

  “너 때문에 내 숙제 망쳤어!”

  다행히 언니가 나를 때린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억울했다. ‘내 숙제도 아니고 밭고랑에 앉아서 찾아봐 주기까지 했으면 됐지.’ 속으로 말을 삼켰다.


  어릴 때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던 언니는 죽다가 살아난 덕에 집에서 특별 대우를 받았다. 어머니는 모든 밭일에서 언니를 제외했고 내가 밭일을 할 동안에도 집에서 혼자 놀았다. 늘 그렇게 생활했기에 언니는 살마를 알 턱이 없었고 방학 숙제를 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살마를 캐지 못한 우리는 할 수 없이 터덜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밭에서 돌아오는 길에 벌집을 보았다. 언니와 나는 동시에 멈춰 섰다. 한두 마리 벌들이 붕붕거리며 벌집에 앉아있었다. 


  “야, 저 벌통에 꿀이 많을까?”

  “글쎄”

  언니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근처에는 보리 짚 같은 게 널려 있었다. 언니는 긴 것을 골라 집어 들어 벌집을 건드렸다. 갑자기 어디선가 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둘은 화들짝 놀라 뛰었다. 우리가 달리기를 한 지, 얼마 못 가서 날아온 벌들이 언니를 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그놈들은 내겐 덤벼들지 않았다. 그 작은 몸에 눈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자신들의 적을 확실히 알아보았음이 틀림없었다. 


  언니는 아야 하면서 손을 휘둘렀고 다행히 벌들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그런데 잠시 후 언니의 얼굴이 부분, 부분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언니도 매한가지였다. 언니의 얼굴이 점점 더 부어오르자 언니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했다. 나는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라 언니한테 말했다.


  “내가 주넹이(지네) 잡으러 다닐 때 들은 이야기인데, 벌레한테 물릴 때는 얼른 오줌을 싸서 바르는 게 좋탠 허연게.” 


  마침 집 가까이라 언니는 쉽사리 자기 오줌을 받아서 얼굴에 발랐다. 얼마 지나자 언니의 얼굴은 진정되었다. 언니가 방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조용히 변소로 갔다. 

  그제야 혼자 해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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