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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Feb 03. 2021

상코지 바닷가

      

   햇볕이 따뜻한 어느 날 어머니와 남동생과 같이 바다를 갔다. 바닷가 상코지에서 어머니는 물질(해녀일)을 하고 우리는 물 얕은 곳에서 놀고 있었다. 바닷물은 반짝이며 가볍게 넘실대고 있었다. 해녀들이 띄워놓은 태왁도 한가로이 뛰놀았다. 바위 위에는 파도가 쳐서 물기가 있는 곳마다 생물이 살고 있었다. 톳, 파래, 발 아픈 따개비, 재빠르게 바위틈으로 사라지는 작은 게, 무엇보다 물컹한 말미잘이 좋았다. 물컹한 말미잘의 분수 안을 손가락으로 찌르면 물이 바깥으로 튀었다. 동생과 나는 그렇게 말미잘 놀이를 하고 있었다. 슬슬 지겨워졌다.


  남동생과 놀다가 심심해진 나는 반짝이는 물빛에 반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수많은 해초가 흔들거렸고 돌맹이들도 빛을 받아 반짝였다. 투명해 보이는 작은 물고기들이 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얼른 두 주먹을 쥐곤 했으나 그놈은 언제나 나보다 빨랐다. 바닷속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신비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나는 보석처럼 빛나는 돌맹이 중에서 예쁜 것을 골라내길 반복했다. 돌맹이를 꺼내면, 물빛이 사라지면서 초라하게 꺼져간다. 못내 아쉬워 다시 골라낸다. 꺼내면 그 빛이 사라진다. 아쉽다. 그러다가 큰 돌덩어리를 들척거렸다. 어라. 오분자기(작은 전복)가 붙어 있었다. 야아! 신이 나서 소리쳤다. 동생에게 주었다. 다시 뒤져볼 심산이었다. 


  “누나 나도 들어가젠(들어갈래).”

 상코지 바위에 앉아있던 동생이 내가 부러운지 졸랐다. 

  “안돼. 어머니가 너 물에 들어오게 하믄 나 혼나.”

 그랬다. 어머니는 동생이 어딜 가면 잘 못 될까 노심초사 걱정을 했다.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걱정은 물에 빠져 죽지나 않을까? 하는 거였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 일은 자주 있었으니까. 그날 나의 역할도 동생 돌보기 아니던가!    


  다시 바닷속을 들여다봤다. 이제는 아예 눈을 뜨고 오래 참았다. 근처 바위에 보니 또 오분자기가 붙어 있다. 으아 신이 난다. 막 때서 들어 올린 찰나, 동생이 물 속에 들어서 있다.

  “안돼. 넌 물에 들어오면 안 되잖아.”

  “뭐, 내 몸 중간밖에 안 하는데 왜 난 못 놀아.”

 동생의 말도 일리가 있다. 바닷가 물 밖에서 따끔거리며 빛을 쬐는 것보다 물 안이 얼마나 시원하고 재밌는가? 게다가 물이 깊지도 않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언젠가 너도 물 안에서 놀 것이니. 동생과 나는 얕은 바닷물 안에서 얼굴이 빨개지도록 놀았다. 놀다 보니 나는 헤엄치고 싶어졌다.     


 “덕아 내가 저기까지 조금만 갔다가 올게. 그러니까 너는 여기 있던지, 아님 바위 위로 올라가서 쉬어.”

  “응.”

  나는 두 발을 풍덩거리며 앞으로 헤엄쳐 나갔다. 멀리 바다는 검푸르게 보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엔 어머니가 물질을 하고 있다. 후우 하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올라오신다. 태왁에 의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물속으로 사라진다. 누가 누구의 어머니인지 알 수는 없지만 태왁이 보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바닷속에 솟아있는 바위 위에 두 발을 얹고서 태왁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동생도 잘 놀고 있었다. 다행이다.     

  나는 다시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아까보다 좀 더 깊어진 곳이다. 뒤로 누운 채 바닷물에 몸을 맡긴다. 그러면 넘실대는 물결이 나를 이끈다. 멀리만 가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넘실대는 물결에 맞추어 하늘을 바라보면 또 새롭다. 하늘색도 다양하다. 구름이 있는 쪽과 없는 쪽이. 구름이 희끗희끗하게 색칠하는 곳도 있다. 바람이 느껴진다. 햇빛이 내 이마를 때린다. 바닷물결이 내 이마를 쓸다가 코로 다가오면 얼른 다시 몸을 돌린다. 나는 다시 바닷속으로 머리를 박고 들어갔다.    

 ‘어, 저게 뭐지?’


  눈에 뜨인 것은 붉은 만장과 지푸라기로 만든 배 그 안에 들어있는 곤밥(쌀밥)이었다. 사람들은 곧잘 굿을 하곤 했다. 굿이 끝나면 무당은 30cm 쯤되는 짚으로 엮은 배 안에 흰쌀밥과 붉은 사과같이 맛난 것을 놓고서 액운이 떠나길 빌었다. 그것이 넘실거리며 멀어지기 시작하면 바다 귀신이 그걸 먹고 액운을 다른 데로 떠나보낸다고 생각했다. 흐억! 굿판을 벌이던 붉은 만장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다. 거기에 붙어 있는 귀신이 내 발을 감쌀 것만 같다. 나는 온 힘을 다해 헤엄쳤다. 맘속으론 예수 마리아를 끊임없이 읊조리며. 다행히 그놈은 내 발을 붙잡지 않았다. 드디어 상코지 가장자리로 돌아와 바위에 걸터앉았다. 


  ‘어라? 동생이 보이질 않는다. 아이쿠야 큰일 났구나. 이를 어째.’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파도에 휩쓸려 갔나? 바다를 내다본다. 물결이 세차지 않는데.. 이 녀석은 헤엄도 못 치는데 어떡하지? 되돌아가야 하나? 저기 만장이 있는 데. 

  “덕아, 덕아”

 불러본다. 대답이 없다. 우선 물 밖의 바위에 올라서서 내다봐야겠다. 바위로 올라갔다. 물 위에는 태왁만 보인다. 에휴. 반대로 육지로 고개를 돌렸다. 어라, 멀리 상코지 초입에 애들이 몰려있는 게 보인다. 혹시나.. 애들을 향하여 달려갔다. 따개비가 발바닥을 찌른다. 제대로 빨리 갈 수 없다. 발을 옹송그리며 달렸다.

  가까이 가보니 거기에 남동생이 있었다. 남자애들이 게를 잡고 둥그렇게 막아놓고 도망가려 하면 작대기로 밀쳐 넣으면서 서로 쌈을 붙이고 있었다. 동생은 뒤에서 애들이 하는 놀이를 눈이 빠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등 짝을 후려졌다. 


  “부르면 대답해야지! 물에 빠져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어쩌려고 그래. 내가 어머니를 어떻게 봐. 앞으로 네 딱지 안 접어주고 너 친구들한테 딱지 잃은 거 내가 다시 따주는 일도 없을 거다. 구슬치기해서 잃어도 안 따주고!”    

 동생은 낭패감에 젖은 얼굴로 말했다. 

 “미안해. 담부터 잘 들을께.”    


  황혼이 붉게 물들기 전에 어머니는 태왁을 가득 채운 채 나타나셨다. 나는 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샘물로 몸을 씻으러 갔다. 어머니는 사이좋게 잘 놀았다고 동생과 나를 칭찬해주셨다. 나는 잡아 올린 오분자기 두 개를 어머니께 내밀며 말했다.     

  “나보다 덕이가 잘 핸마씨(잘 했어요).” 

  우리는 바닷가 노을을 뒤로 한 채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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