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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May 14. 2022

미미의 삶

 임영웅 팬이 하는 커피숍이라 입구엔 영웅을 기념하는 기념물들이 장식장 안에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영웅 팬 카페 사람들이 몰려와서 함께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가수에 대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같은 가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약속을 잡고 이곳저곳에서 몰려와서 같이 커피를 마시는 게 내게는 신기하면서도 참 부럽기도 하였다. 우리는 그 커피숍 한 귀퉁이에 앉아 한참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미미야 너는 어떵허연 너네 남편과 만나게 됐니?”

  갑자기 송실이가 묻는 말에 내가 움찔거렸다. 미미는 오래전에 남편을 암으로 잃었다.   


  “우리 애들 아빠가 내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와서라. 원장님 방에서 차 한잔 마셔신디, 그 후에 나 좋다고 쫓아다년 게. 나안티 잘 해줬지. 삼춘, 삼춘 허멍 지내당 보난 경 됐져”     


  미미는 담담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송실이와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녀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미미의 남편은 미미와 띠동갑이었다. 예전엔 그렇게 나이 차가 많은 결혼이 극히 드물었기에 송실는 궁금했던 모양이다. 미미는 남편이 끈질긴 구애로 결혼을 했고 결혼 후에는 남편의 울타리 안에서 알콩달콩 지내는 삶을 살았다. 한 가지 흠은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그녀의 옛 친구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 후 미미는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고 아이들과 남편만을 오롯이 바라보며 살았다. 그 대신 그녀는 남편 친구의 부인들 혹은 거래처 사람들의 부인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그들과도 별 어려움 없이 사이좋게 잘 지냈다. 


  그녀의 남편은 사업을 더 크게 확장했고 미미도 그중 하나의 대리점을 맡아서 장사를 하게 되었다. 나름 그렇게 장사나 사업도 잘되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그녀에게 불행이 닥쳤다. 그녀의 나이 40세에 남편에게 간암이 소리소문없이 찾아온 것이다. 사업은 엉거주춤 멈춰 서게 되었고 그녀의 남편은 입원했다. 미미는 남편이 있는 서울 성모병원과 삶의 터전인 제주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병수발을 들었다. 그러다가 중학생인 아들과 딸을 남긴 채 그녀의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나는 남편이 죽으면 사람들이 혼자 남은 나를 봐서라도 물건값을 잘 갚을 줄 알았어.”
  

  미미는 그때의 아픔이 되살아나는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송실이가 말없이 미미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나는 미미에게 다정한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업주가 사라지고 없게 되자 물건을 외상으로 가져간 사람들은 배짱을 부렸고 차일피일 미루며 갚지 않았다. 어디에서 얼마를 찾아야 될지 모르는 거래도 많았다. 송실와 나는 이구동성으로 ‘사람들이 참 못됐구나’를 연발하면서 이맛살을 찌푸렸다. 


  커피숍의 젊은 주인은 그녀가 좋아하는 임영웅의 노래를 틀어주었다. 잔잔한 가요가 흐르는 늦은 오후에 햇살도 흐릿하게 어른거리며 빈 테이블을 적시고 있었다.      


  “나 그 돈 받으러 다니다가는 삶을 제대로 살지 못 허커라라.”  

   

  미미는 돈 받기를 포기했다. 그러니 남편이 벌였던 사업은 결국 있으나 마나 한 게 되었다. 삶이 나락에 떨어진 것 같은 실망이 찾아왔다. 미미에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자신이 하던 타올 대리점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모든 것을 처분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 있던 친척에 의지하여 그곳에서 음식점을 열었다.    


  “나는 17년을 남편과 살았는데, 그 이후에 산 삶은 남편이 살았던 길을 되짚어 사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럴 땐 어떡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남편이 어떻게 살았었는지를 되새겨보며 살아내었지.”     


  그녀의 길고 지난 했던 삶이 내 커피로 녹아드는 것 같았다. 송실이도 묵묵히 커피잔을 들었다가 놨다. 그 간의 삶이 힘들었을 텐데도 미미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남편이 죽었을 때, 집적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더라. 다 잘 알던 사람들이더라. 남편의 친구나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야...... 그래서 그때부터 강해진 것 같아.”    


  그러니까 외롭고 힘든 여자의 심정을 파고들어 연인의 관계를 맺으려는 그들은 다름 아닌 남편의 지인들이었던 것이다. 미미의 얘기를 들으며 나라면 그런 상황을 어떻게 견뎠을까? 미미처럼 강하게 밀어낼 수 있었을까? 삶이 힘들다고 여겨지던 순간엔 어쩌면 잠깐의 위로나마 받고싶어하진 않았을까? 그 어느 것도 쉽사리 자신할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남자는 다 그렇고 그런 것 같아. 어떻게든 엮어보려고 하지.”

  송실이가 말을 받았다.     


  얼굴이 예쁜 미미는 접근하는 남자들에게 빈틈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남편이 사망할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 딸을 키우느라 오롯이 20년 동안 앞만 보고 내 달리듯 삶을 살았다. 그 덕에 아이들은 잘 커 주었고 지금은 손자를 키우며 편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나 보다.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 어쩌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고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싶기도 했을 텐데,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꿋꿋이 살아온 그녀가 새삼 달라 보여서 나는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잔주름이 보일 듯 말듯한 그녀의 얼굴에서 단아한 기품이 느껴졌다.     


  “나 요즘에 애 아빠 꿈을 많이 꿔. 건널목 길목에 서 있는데 환하게 웃고 있어. 그래서 기분이 좋아. 딸에게 말하니 좋은 꿈 같다고 해서 복권을 샀다. 딸이 물어보더라 복권 10억에 당첨되면 뭐할 거냐고? 나는 앞으로 20년 동안 내가 사는데 필요한 생활비로 더러 남겨두고 나머지는 매달마다 손자들에게 적금을 부어 주려고 한다고 했지.”   

  

  그 말에 우리는 서로 빙긋이 웃었다. 잔잔히 말하던 미미도 가만히 듣던 우리도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마무리였다. 우리는 더 늙기 전에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누자며 함께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반대편 지하철로 내려가는 미미의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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