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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May 06. 2022

입원실의 풍경2

2, 3일차 병실 풍경

2일 차.

  각 침대마다 사람들의 밥 먹는 소리가 들린다. 옆 침대에서 후루룩 짭짭거리는 소리가 유난하다. 남편은 어젯밤부터 금식이라 아무것도 못 먹는데 냄새가 흘러오니 안타깝다. 식사를 다 끝낸 왼쪽 옆 침대 사람은 뭔가가 더 궁금한 모양이다. ‘뭐 먹을 거 없어?’란다. 저 집은 오늘 MRI를 찍고 별 탈 없으면 퇴원할 것이다. 암 걸린 사람치고는 식욕이 좋은 걸 보면 내가 잘못 들었을지 모른다.  

    

  11시에 이동인이 들것을 끌고 남편을 이송하러 왔다. 항생제와 소염제를 넣고 2층에 있는 수술실로 내려갔다. 수술실 앞에는 대기할 곳이 없어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이제 수술이 어찌 되는 지는 의사의 몫이다. 나는 조용히 앉아 기도할 뿐.     


  우리 바로 맞은 편에 입원한 환자는 가족이 없다. 젊은 사람이 홀로 들어왔다. 가족끼리 복작대는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제 그도 수술실로 들어갈 시간이다. 간호사가 와서 다시 확인을 한다.      

  “속에 팬티며 모든 것을 벗으셨나요?”

  “네”     


  환자는 수술 직전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갔다 온 후 이송원이 끄는 침대에 누워서 움직여갈 것이다. 신발도 심지어 호주머니에 휴지 조각 조차도 다 두고 가야 하는 걸 보면 ‘아, 우리가 죽어갈 때도 저렇게 빈 몸으로 가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1평도 안 되는 이동식 침대칸에 누워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여가듯, 타인에 의해서 이끌려 무덤으로 들어가겠지. 우리의 영혼은 그 순간 어떤 모습일까? 죽음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자신이 몸뚱이었던 껍질 위로 올라가서 자신이 가는 모습을 지켜볼까?     

  병실 보호자 침대 위에 앉아 책을 읽는다. 그러나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오는 이곳에서 집중하기는 어렵다. 좀 재미있는 책을 가져올걸. 커튼 밑으로 움직여가는 이웃 환자의 발이 눈에 들어온다. 이 병실에서 제일 두드러진 건 광명의 움직임이다.     


  광명이는 끊임없이 엄마에게 묻는다. 더러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건지 자꾸 묻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드림이 맞아?, 올림이 맞아?”

  “올림”

  “왜, 올림이야?”     


  엄마는 긴 병수발 때문인지 말마다 짜증이 묻어나고 있다. 그에 비해 그의 아들은 말마다 긍정적이다. 


  “응...... 엄마, 하지 않을게.”

  “그럼 이따가 내려갈 거지? 1층으로 갈까? 2층으로 갈까?”
   엄마는 답이 없다.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진다. 간간이 엄마가 답을 한다.


  광명이가 성경을 한 구절 읽더니 노래를 한다. ‘사랑한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원하노라.’ 드디어 기도를 다 했는지 복도로 나갔다.

  서울대 병실은 인기가 많다. 옆 침대가 비는가, 했더니 바로 오후에 다시 들어왔다. 그만큼 수술 일정이 빼곡히 짜여 있다는 얘기인 것 같다.     


  오후 2시가 넘어가는 시간, 남편이 수술실로 향한 지 3시간째다. 왜 아직도 안 오는 걸까? 간단한 수술이라 했는데...... 드디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병실서 기다릴 뿐, 다른 할 일이 없다.     


  6인 병실의 화장실에선 오줌싸는 소리가 다 들린다. 답답하지만 병실들이 죽 연결된 복도뿐 호젓한 공간이라고는 없다. 병실 출입문 바깥으로 나가면 엘리베이터와 연결되는 복도가 있고 그곳에만 TV와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일종의 휴게실로 의자도 여럿 있다.  

   

  광명이는 뭔가가 잘못된 모양이다. 엄마가 목사님과 전화로 대화를 하는데 속상한지, 기도에 응답이 없다고 한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가?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냐?’ 고 울먹인다. 수술을 할 건지 말 건지 상처가 붇고 피가 나고, 물이 차 있고 왜 좋아지다가 나빠지는지...... 그녀가 길게 하소연하고 있다. 담당 의사들의 반응도 왔다 갔다 하나 보다. 심경이 복잡한 그녀의 얘기를 들으니 그저 안타깝다. 긴 얘기가 끝나고 드디어 엄마는 광명을 불러 전화를 받게 한다.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사님의 기도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광명이가 뽀송뽀송하게 나을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중략)...... 인간이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치유해줄 것을 믿습니다!”

  “아멘”     


  광명이가 전화기에 대고 천연덕스럽게 묻는다. 

  “언제 교회에 와요?”

  “응, 다 나은 다음에 와도 돼.”     


  기도가 끝나고 시간이 흐른 후 광명이는 맛있게 뭔가를 먹고 있다. 그래도 천연덕스럽게 먹으며 말하는 광명이가 귀엽다.      

  “간호사 선생님한테 혼나? 안 혼나?”

엄마의 대답이 나는 슬프게 들린다.

  “간호사님이 먹으라고 준 건데. 안 혼나.”   

  

  3시 53분이 되어서 남편은 병실로 돌아왔다. 수술한 콧구멍 속에는 특수 솜이 가득 차 있고 떨어지는 핏방울을 막기 위해서 거즈를 붙이고 있다. 오로지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한다. 

  간호사가 다시 혈압과 체온을 체크하더니 진통제를 달아주면서 주의 사항을 얘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코를 풀지 않는 것, 위에서 아래로 세수해야 하고 기침이나 재채기는 입을 벌려서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코를 수술했으니 당연히 코로 물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단다.


  “수술 후 두 시간 동안은 잠을 자면 안 돼요.” 


  허리를 꼿꼿하게 펴서 앉은 채 있으라며 간호사는 침대를 세워주고 나갔다. 그러나 남편은 끊임없이 아~하는 신음 소리를 내고 두 번 다시 못할 수술이라며 힘들어한다. 진통제를 바꿨다. 잠 안 자고 버티기 위해 애를 쓰다 겨우 2시간 채우고 비로소 잠에 빠지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 두통이 심하다 해서 얻어온 얼음주머니가 조금씩 녹아가고 있다. 손수건이 없으니 이마에 물휴지를 몇 개 포개어 놓고 그 위에 얼음팩을 얹어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저녁 6시가 넘어가자 환자 석식이 배달된다. 남편은 지금 식사를 할 수 없다. 금식 시간이 안 지났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샀던 빵을 먹었다. 담당 의사가 회진 온다는데 언제인지 몰라서 기다리느라 그런 것이다. 빵을 먹으면서 그래도 환자 식사 시간엔 방문을 안 하겠지 했는데 웬걸 식사 시간 10분쯤 지났을 무렵 담당의가 들어왔다.   

   

  “축농증을 앓은 지 오래 되서 수술을 하느라 애먹었어요. 수술은 잘 됐고 별일 없으면 내일 퇴원합니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담당 의사가 말을 마치더니 입을 벌려 수술한 부위를 한번 보고서는 나간다.   

   

  저녁을 먹고 나자 시간을 두고 각자 양치질을 한다. 그 후 잠시 고요해진 시간, 가끔 광명이가 말하는 소리, 병실을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 핸드폰 소리만 들린다. 병실에선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8시인가 보다. 금식을 알리는 팻말을 바라보며 시간을 재고 있다. 진통제와 주사약이 소리 없이 방울지며 떨어져 내리고 있다.     

  밤 9시에 전등불이 꺼지고 10시가 되니 광명의 코 고는 소리만 들린다. 자야 할 시간이 되었다. 얇은 모포 한 장만으로도 지낼 만큼 병실은 따뜻하다. 밤에 두어 번 간호사가 오가는 바람에 잠을 잔 듯 만 듯하다.      

    

3일째 아침,     

  담당 레지던트가 7시쯤에 와서는 얼굴을 내밀더니, 목 안을 한번 들여다보고 돌아갔다. ‘담당의는 오늘 학회로 바빠서 올 수 없다’고 말하면서.


  남편이 아침 식사를 하더니 어제보다 여유가 생기는지, 수술실 얘기를 해주었다.


  2층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서 20분은 넘게 기다려야 했어. 드디어 수술실로 이동하니 TV에서 보던 대로 천정에는 불빛이 휘황하더라. 담당의 외에 레지던트와 인턴들이 네다섯 명이 서 있었는데 그중 누군가 내게 이름과 생년월일을 대라고 했어. 그때 마취제가 들어가서였는지 생년월일을 대고 난 후 의식이 없었지. 깨어날 때쯤 해서 다른 사람보다 내가 수술을 오래 했다고 했어. 힘든 수술이었다고. 수술실은 추웠고 거기서 오래 있었던 때문인지 몸이 으슬으슬해서 열이 나게 됐었나 봐.  

   

  9시 반경 간호사는 11시에 퇴원한다고 알려왔다. 11시가 되어 병실 문을 나서면서 고개를 돌려보니 다 조용하다. 인사를 하기가 머쓱해 조용히 나오려다 문간에 있는 광명이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커튼 앞에 서서 ‘광명이가 얼른 병이 좋아지기를 바란다’고 인사를 했다. 광명 어머니가 커튼 밖으로 나오시며 애써 웃음을 지으셨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남편 대신 내가 캐리어 가방을 끌고 병원 문을 나섰다. 고심 끝에 슬리핑 백을 갖고 오지 않았던 것을 무척 다행히 여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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