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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May 06. 2022

입원실의 풍경1

병실 입원 1일차

  서울대 병원 10층 00호실, 남편의 부비동염을 수술하기 위해 입원했다. 

  아침부터 수건, 세면도구, 옷가지, 컵과 물병, 그리고 간단한 침구까지 병원 입원에 필요한 물품을 챙겨서 캐리어 안에 담아 넣었다. 점심을 먹고선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에서 내려서 서울대 병원 본관에 도착했다. 코로나 관련해서 병원 입구를 막고 체크를 하던 것이 사라져 버린 걸 보니, 이제는 코로나가 좀 진정되는 단계이구나 싶었다. 


  입원 수속을 위한 번호표를 뽑았다. 입원실은 아직도 코로나에 대해 엄중했다. 미리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받고, 음성임을 확인하는 문자를 보여주어야 입원할 수 있다. 다행히 보건소에서는 수술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의 PCR 검사까지 무료로 해준다. 원무과 담당자는 입원 수속 처리 후 보호자인 내 팔에 출입증용 띠를 둘러주었다.    

  

  입원 수속을 끝내고 오후 2시 넘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저기 앉거나 서성이는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올랐다. 00호 병실이 있는 입구에서 보니 출입문이 닫혀있다. 망설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문에 있는 센서에 출입증용 띠를 대니 문이 열렸다.     


  데스크에서 담당 간호사를 만났다. 그녀는 우리를 병실로 안내하더니 몇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문진표와 안내서 및 유의 사항 등이다. 6인실 병실은 침대를 둘러싼 커튼들로 경계가 져 있다. 낯설다. 병실은 오갈 수 있는 공간 너머로 유리창이 보이고 창밖에서 햇볕이 들어온다. 세면대 하나, 샤워기가 달린 화장실 하나가 있다. 커튼이 모두 쳐져 있는 걸 보니 침대마다 사람들이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커튼으로 둘러쳐진 칸막이 사이로 사람들의 말소리가 새어 나온다.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들 커튼 안에 숨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달라진 병실 모습인 것 같다.   

  

  남편은 간단하게 문진표를 작성했다. 그 문진표에는 평소 복용하는 약의 유무와 함께 술과 담배를 하는지, 하면 얼마나 하는지를 묻는 항목이 있었다. 남편은 월 소주 1병이라고 적어 넣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간호사와 면담을 하는 데 그게 중요한지 다시 묻는다.  

   

  “한 달에 소주 한 병씩 마신다는 얘기죠?” “네”

  “그럼 얼마 동안 그렇게 마셨어요?”

  “한 30년쯤 되죠.”   

  

  무엇 때문에 그런 자료가 필요할까? 부비동염(축농증) 수술을 하는데 술을 마셨던 게 문제가 되나? 아니면 축농증 걸리는 게 술과 관계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수술의 경과가 술을 마시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건가? 

  연노란 아이보리색 커튼으로 둘러쳐진 2평 정도의 공간에서 두 사람이 몸을 구겨 넣고 몇 시간 동안 앉아있자니 별의별 것에 다 관심이 간다.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 가방 문을 여닫는 소리, 간간이 들리는 말소리. 둘러쳐진 커튼으로 인해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움직이는 소리만 들리니 답답하다. 코로나19 때문에 이웃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치지도 말고 얘기도 하지 말라는 뜻이니 어쩔 수 없지.    

 

  남편의 수술은 내일이다. 지금은 수술 전날 오후 4시, 창밖에선 햇빛이 짱짱하게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고 있다. 오른쪽 옆 침대의 환자는 오늘 수술을 했나 보다. 그가 컥 하고 가래를 뱉는다. 얼마 후 그 환자를 담당하는 의사인가, 환자 이름을 부르더니 커튼을 젖히는 소리가 들린다.   

  

  “얼굴은 가만히 두시고 이것만 따라서 보세요.”

  “음 괜찮은 것 같네요. 이따 교수님이 오실 거예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코를 수술할 때 수술이 잘못되면 눈 신경을 건드릴 수 있으니까 눈에 이상이 있는지 의사의 지시에 따라 눈을 움직여보라는 거였나 보았다. 아내가 남편에게 말을 건다.     


  “어디가 아파 겉이? 속이? 욱신욱신해? 한 대 맞은 것처럼 아파?”

  “말하고 싶지도 않아...... 정신은 말짱한데 코는 모르겠어.”     

  이어서 담당 교수가 왔는지, 다시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술은 잘 됐구요. 내일 퇴원하시면 돼요. 그리고 담주에 외래로 방문하시고.”   

  

 남편의 맞은편 왼쪽, 또 다른 환자를 방문한 다른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다.     

  “안녕하세요? (잠시 후) 몸은 괜찮은 것 같네요.” 

  “저...... 여기가 남의 살 같아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괜찮아질 거예요. 쉬세요.”     


  이 방에 있는 환자는 모두 단기간 입원이라고 쓰여있다. 이비인후과 수술 환자들이 많은 것 같다. 여러 담당 의사가 들락거리며 회진을 하는데 환자당 회진 시간은 길어야 2~3분이다. (담당 전문의들이 시간이 없을 뿐 레지던트나 간호사들은 물으면 자세히 설명해주고 친절하다.)     


  4시 30분쯤 되자 드디어 남편을 담당하는 레지던트가 들어왔다. 총기가 있어 보이는 젊은 청년을 따라 설명을 들으러 갔다. 그는 지난번 찍었던 CT 사진을 보여주며 남편의 축농증이 어려서부터 생겼던 것 같다고 했다.     

  “여기 보시면 코뼈가 휘어져 있잖아요. 워낙 오랫동안 염증을 앓아서 석화가 진행됐는지 코뼈가 휘었어요.”      

  그 뼈가 원래는 직선 모양이라는데 지시봉이 닿는 부위엔 ㅅ자 형으로 휜 뼈가 보인다. 그동안 30%만 코의 기능을 했을 거라며 코뼈를 교정하는 수술도 함께 진행할 거라고 한다. 젊은 의사는 찬찬히 설명을 하더니,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받는다. 다시 마지막으로 레이저 사진을 찍는데 남편의 콧속에 물혹이 보인다. 내 눈에도 커 보이는 혹이다. 내일 함께 제거한단다.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남편은 침대에 엉거주춤 기대어 앉았고 나는 보조 침대에 앉았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이번엔 맞은 편 오른쪽 침대에서 소리가 났다.   

  

  “간호사님 이름은 뭐예요? 간호사 선생님 이름은 임. 경. 재”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는 나이 어린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구, 아이구.. 가만히 좀 있어 봐”

  엄마가 말리는 소리다. 이어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 귀에 물들어가지 않는 게 정말 중요하니까 물 들어가지 않게 해주시고...... 광명님, 먹는 약은 저희가 준 게 다죠?”     

  간호사의 질문에 엄마가 대답한다.

  “내일 하나 남았는데, 집에 있는 약을 가져오라고 할게요.”

  “선생님 이거...... 한 번 더?”

  광명이가 뭔가의 치료 기구를 들이대며 묻나 보다.

  “됐어요. 너무 자주 하면 의미가 없어요. 그 정도만 하면 돼요.”     


  앞쪽 침대에 입원한 광명이는 약간 발달장애가 있는 것 같다. 6인실이라 대부분 소곤거리는데 광명이만 유치원생 어린이처럼 거침없이 말을 한다. 주변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서 자꾸 눈이 가는 행동도 하는 것 같다.      

  “아줌마, 저 조용히 할게요.... (중략).... 사랑해요.”

  우리 옆쪽 침대에 서서 꼭 말을 건네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눈치가 없는 게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 발달이 더뎌 안됐다고 해야 할까?      


  이번엔 다시 우리 왼쪽 침대에 의사가 왔다.     

  “내일 다시 MRI를 찍어요. 수술 경과가 어떤지 보기 위한 거니까 걱정 마시구요.

  ...... (중략) 어쨌든 잘 회복되고 계시니까......”     

  의사가 가고 나자 젊은 부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집에 간다고?(설레는 듯한 목소리) 집에 간다고? 불안한데......”   

  

  나중에 보니 우리 왼쪽 옆은 젊은 남자 환자가 귀를 싸매고 있는데 등까지 아프다고 했다. 혀의 유두도 터져서 피가 나온다고 하니 대체 어디가 아픈 걸까? 무슨 암 검사를 진행한 것 같기도 한 걸 보면 어딘가 중병인 듯싶다. 그럼에도 소곤소곤 말하는 걸 보니 젊은 부부가 밝고 명랑하다. 그런 그들이 참 예뻐 보인다.    

 

  이렇듯 가만히 앉아 커튼 사이로 오가는 얘기를 들으니, 여기 입원한 사람들 각자가 처한 사정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리고 그 사정 속에서도 어떻게든 잘 살아내기 위하여 좁은 공간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도 느껴진다. 그 안에서도 젊은 사람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그에 비해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은 조용히 삭혀내면서 그 답답함을 견뎌내고 있다. 


  그렇게 입원 첫날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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