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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Jun 11. 2022

호스피스 병동 일기

- 코로나 이전 ...  호스피스 활동 이야기

         

  ‘지난주에는 네 분이 임종하셨습니다. 오희선씨는 11월 27일에..’ 복지사의 브리핑을 듣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향년 65세 췌장암의 희선씨, 그녀는 허리 통증이 심해서 몸을 뒤척이기가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물 목욕을 시켜달라는 환자였다. 콧날이 오똑하고 외꺼풀이지만 큼직하고 시원한 눈매를 보면서 남편이 예전에 미스 전북이라는 말이 실감 날 만큼 예쁘고 아직 피부도 깨끗했다. 그때가 11월 4일 화요일이었다.


  물 목욕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린 후 비닐 앞치마를 입는다. 남자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시트 채로 들 것에 조심히 환자를 옮긴다. 목욕실에서 환자의 옷을 조심히 벗기고 춥지 않게 덮는다. 머리부터 감긴 후 온몸을 비누칠해 가며 빠른 손놀림으로 씻는다. ‘아래도 씻겨드릴까요?’ 묻고선 음부며 항문까지 물수건으로 깨끗이 닦는다. 이렇게 목욕을 시켜드리고 나서 새 옷을 입히는데 빨리 몸을 뒤척이다 보니 그녀가 울었다. 그만큼 통증이 큰 것이다. 


  그다음 주 화요일, 브리핑을 받는 환자 중에 72세의 현경씨가 있다. 그녀는 폐암, 천주교인이고 세례명이 데레사이다. 그녀는 기도를 원한다. 우리는 모두 그녀가 있는 백합방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간병인께 인사를 하고 봉사자 10명이 침대를 둘러싸고 다함께 기도를 하는데 옆에서 찬송가가 크게 울려 퍼진다. 나는 살짝 짜증이 나서 속으로 말한다.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기도할 때만이라도 좀 작게 하지.. 기도가 끝나고 보니 보호자는 없고 희선씨다. 희선씨 방이 바뀌어 있다. 방뿐 아니라 그녀의 얼굴이 누렇게 뜨기 시작했다. 눈에 힘이 없이 늘어져 보인다. 그만큼 삶의 기운이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그날 나는 다른 멤버 둘과 수선화 방으로 갔는데 아직 40대의 젊은 남성이 우리가 들어가니 밖으로 피해 버린다. 희진씨의 남편이다. 그녀는 43세 유방암이다. 아직 짱짱한 나이인데.. 중 1 올라간 딸아이는 아직 병원에 안 왔다 갔다고 한다. 그 얘길 들으며 우리는 모두 “저런!” 아쉬워했다. 엄마랑 함께 있을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데 어떡하나.. 젊은 남자 복지사는 화해할 이벤트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세발, 발 마사지.


  ‘머리 감겨 드릴께요~’ 희진씨는 게슴츠레 눈을 떴을 뿐 대답이 없다. 나는 버튼을 눌러 서서히 침대를 올린다. 베개를 빼고 목 주변에 에이프런을 두른다. 물비누를 손에 떨구고 문질러 그녀의 머리를 감긴다. 다른 자매가 뜨거운 물수건을 넘겨주면 받아서 깨끗이 닦아낸다. 두 번 반복하고 마른 수건으로 닦은 후 드라이기로 말려준다. 그리고 나서 얼굴에 스팀 타올, 얼굴 닦기, 로션 바르기. 로션을 얼굴에 곱게 펴 바르면 살짝 윤기가 돈다. 그럴 때 센스있는 간병인은 다가와서 한마디 해준다. “아이, 예뻐졌네요. 어때 시원하죠? 얼굴에 광채가 나네!” 


  희진씨의 발은 퉁퉁 부어있었다. 둘이서 뜨거운 물 찜질을 하고 핸드크림을 듬뿍 발라 문질러 대면서 무릎 위쪽으로 쓸어주어도 단단해진 발등은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였다. 남편에게 시간 날 때마다 문질러 주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은데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이 젊은 나이에 오죽이나 상심이 많으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기습처럼 닥쳤을 테니! 


  몇 주전 일이 생각났다. 그날 복지사는 40대의 복희씨가 햇살방에 있다고 했다. 햇살방은 임종이 닥쳐온 사람이 가는 방이다. 그 방에 들어가는 환자는 의식이 없는 경우이고 가족들은 닥쳐올 죽음과 장례 절차를 준비하는 마음 준비 방이다. 복지사는 천주교인인 우리들 모두가 함께 가서 기도를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방방 마다 흩어져 들어가 일하기 전에 일단 햇살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손을 부여잡고 고개 숙여 있던 남편이 그냥 나가 달라고 했다. 눈물이 그렁한 채로, 기도는 필요 없다고. 의식이 없이 헐떡거리는 아내를 붙잡고 울고 있던 것이다. 아마 그녀의 언니가 기도해달라고 복지사에게 요청했나 보았다. 이럴 때는 마음이 참 안 좋다. 천국으로 가는 티켓은 믿는 자가 선택할 몫인데 그녀는 더 이상 말이 없고 우리는 물러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준비를 못 하고 떠나는 게 아닌가 싶어 못 내 찜찜하다. 이해는 간다. 인생을 살면서 내 잘못이 아닌 억울한 순간이 오면, ‘신이 있다면 어찌 이럴 수 있냐?’ 고 누구나 울부짖으리라. 그러나 그가 아니라 그녀가 가는 길인데.. 여전히 아쉬움을 뒤로하고 각자 할 일로 돌아섰다.


  찜찜한 마음은 매화방 김종남씨 앞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나이 77세 위암 환자다. 항암치료로 머리는 민둥산에 새싹이 자라듯 하고 눈은 똘망똘망하고 키는 작으나 의사가 분명하다. 오늘도 물비누로 머리 감기는데 춥다고 야단이다. 얼른 뜨듯한 물수건을 덮어주면 ‘아 좋다’를 연발한다. 몸을 닦고 마사지를 끝내고 나면 시원하다고 고맙다는 인사도 잘한다. 그녀를 보면 ‘죽음으로 가는 삶이 참 단순하고 가벼울 수 있구나’ 생각한다.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음이 찾아오면 그래 가자 하고 편하게 팔 동무 할 것만 같다.


  내가 희선씨를 처음 본 지 3주가 지났다. 그날도 그녀 옆에 있는 현경씨에게 기도 먼저 하기 위하여 몰려갔다. 찬송가 소리가 아주 작게 들리고 그녀의 얼굴이 퇴색한 낙엽 같다. 눈꺼풀이 무거워 거의 잠기고 코에 산소 줄을 꽂은 채 숨만 색색거린다. 얼마 안 남았구나! 직감적으로 다가오는 느낌. 돌아 나오는데 희선씨 동생이 부른다. 언니를 위해서 기도를 해달라는 거다. 우리는 다시 모여 그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부디 선종하소서!


  그랬는데 오늘 오니 그녀가 가고 없다. 그 자리엔 지난 번에 입원했던 금이씨가 대신 와있다. 국가에서 지원받는 것이라 한 곳에만 오래 머무를 수 없다. 그래서 금이씨는 자생병원으로 갔다가 거기서도 기한이 넘치자 다시 이곳으로 온 것이다. 이렇게 몇 개월씩 죽음의 집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기도 한다. 기도 중인데도 현경씨는 잠만 자고 있다. 숨소리만 내면서 깊이 빠져있다. 얼굴 색깔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다.

     

  여기는 이렇게 죽음으로 가는 사람들이 머무는 집이다. 암 치료를 포기한 사람들만이 올 수 있는 집인 호스피스 병동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한다. 곧 죽어서 썩어갈지라도 오늘만큼은 상큼하게 지내도록 닦아주고 마사지해줄 봉사자들이 오고 가고 밤낮으로 교대하며 돌보는 간병인도 병실마다 배치되어 있다. 간호사들은 정기적으로 혈압을 체크하거나 진통제를 주며 복지사들은 그들과 이야기 나누며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돕는다. 그럼에도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이다. 가족보다 더 가깝게 마음을 나눌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첫눈이 내렸고 그 때문에 희진씨는 기분이 좋아져서 젊은 남자 복지사에게 “눈 내리잖아, 나갔다 오세요. 제가 2시간 동안 보내드릴께” 하며 희미하게 웃기까지 했다고 한다. 중 1인 딸아이는 병문안 왔다 가긴 했으나 마음의 응어리는 남은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 엄마가 한 얘기들이 아이에겐 오빠랑 비교당한 것으로 속상하게 맺혀있단다. 다음 주 내로 가족끼리 모이는 성탄이벤트를 열어 편지를 서로 읽으면서 화해하는 이별의 시간을 마련하려나 보았다. 그걸 보면 희진씨는 아마 알고 있을 거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걸. 마지막일지 모르는 성찬의 시간에 딸과 잘 이별하고 싶을 것이다.

 

  죽음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탄 사람들도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루 해가 뜨고 사람들이 오고 밥을 먹고 주사를 맞고 세발을 하거나 마사지를 받거나 가끔가다 음악 치료 선생님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면 그 노래에 맞춰 추억에도 잠기면서 살아간다. 옆 짝꿍이 너무 시끄럽다고 불평하거나 무뚝뚝하게 굴면 저 사람이 무뚝뚝하다고 마사지하는 내 귀에 뒷담화도 깐다. 평소에 하던 욕짓거리 버릇을 못 버리고 간병인에게 하도 욕을 많이 하는 바람에 간병인이 울면서 병실을 바꿔 달라기도 한다. 퉁명스러운 사람은 퉁명스럽고 배려 잘하는 사람은 고맙다고 비타 500을 주기도 하고 명랑한 사람은 잘 재잘된다. 죽음이 가까워져서 고통스럽기 전까지는. 


  자신의 기질은 바꿀 수 없다. 다만 스스로 느껴서 나쁜 점은 줄이고 좋은 점은 살리려고 부단히 노력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 너머의 세상으로 갈 때까지 고상한 죽음은커녕 애들같이 유치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채 덜컥 넘어가리라. 게다가 목욕 후 신었던 양말까지 잘 챙겨줘야 하는 걸 보면 죽는 순간까지 사유재산은 확실히 지켜줘야 한다.


  그러나 아쉽다. 이생과 이별할 순간까지도 죽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어느 집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있다가 점점 고통스러워지며 의식이 없어질 때까지 지내고 있다는 것이..  오늘은 독방에 사는 76세 백혈병인 현영씨가 머리부터 발 마사지까지 끝내고 나니 도도한 콧날을 바로 세우고 정면으로 또렷이 바라보면서 말한다. “시원해! 아주 기분이 좋아. 이제 걸어 나가 집으로 가면 될 것 같은데..” 봉사자들을 칭찬하면서 옆에서 열심히 엄마를 챙기던 딸이 건낸 “엄마 시원하지?”에 보낸 엄마의 반응이다. 딸내미는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는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이별할 모든 것과 잘 이별하면서 품위 있게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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