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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Jul 08. 2022

그래 혼자, 이렇게 늙어가는 거지

- 삶은 지나간다. 울고 실망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

  코펜하겐 소주잔엔 네덜란드 국기가 그려져 있다. 왕관을 쓴 국기. 2017년, 네덜란드에 여행 갔을 때 기념으로 샀던 잔이다. 그때만 해도 행복학교를 꿈꾸던 교사였지. 나도 아이들도 행복하려면 학교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 지가 궁금했었다. 그래서 오마이스쿨이 진행하는 네덜란드의 각종 학교를 견학하며 세계에서 가장 행복 지수가 높은 그들을 열심히 탐색했었지.


  혼자서 실쭉 웃으며 나는 ‘서울의 밤’ 한잔을 천천히 입에 털어 넣는다. 가벼운 맥주는 싫어. 이럴 땐 찐한 증류주 한잔이 더 나아. 

  왜 마셨더라? 아, 그렇지. <혼자 늙어가는 거야>라는 기분에 찌르르함을 더해 보고 싶었지.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한다...... 지랄 맞다.     


  어제 간만에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온 지 나흘째다. 

  뭐 했지? 

  오전에 점심 준비를 하고 점심을 먹으면 기타를 친다. 그리고 중국어를 공부했지. ‘라오쉬! 닌하오마?’ 재밌다. 처음 시작하는 거니까, 재밌겠지. 어떨 때는 책방엘 가고 요가를 가고 기타를 배우고 밥을 해 먹고 청소와 빨래도 한다. 


  매일 남편과 걷는다. 그것만이 함께하는 행동이다. 말없이 각자 생각에 빠지면서 두 시간 가까이 대공원 둘레를 돈다. 숲은 언제나 편하고 좋지만 나는 감동할 줄 모른다.   

   

  “어머! 예뻐라” 


  나만큼이나 나이 든 여자가 장미 정원 둘레에 핀 분홍 장미꽃을 쓰다듬는다. 자기 남편과 사진을 찍으며 서로 애틋한 포즈를 취할 동안에도 나는 멍하니 쳐다볼 뿐이다. 동네 개가 마실 나온 모양으로 돌아다니기만 할 뿐 순간을 기뻐할 줄 모르는 나. 그 옆에서 무심한 또 다른 짝꿍. 


  저녁을 먹고 또 글을 쓴다고 앉아있으니, 웃기지도 않지. 감동을 못 하는 내가 무슨 글을 쓴다고. 

  왜 이렇게 변했지? 33년의 직장생활에서 기를 빨렸다고 하면 얼마나 우스운 변명일까? 그렇게 속으로 뇌까리면서도 슬프다. 

  어떤 날은 유튜브에서 부동산이며 경제 뉴스를 보느라고 하 세월을 보낼 때도 많다.  

   

  어젯밤에도 11시쯤 돼서야 책을 잡았다. 황정은의 연년세세. 밤 1시가 넘어 한 꼭지를 남겨두고 잠이 들었다. 장미꽃을 손바닥에 짓이기듯 진한 향기를 느꼈다. 글은 그리 써야 하는 건데. 


  그러다 잠들었는데 아침이 되자 몸이 피곤해졌다. 남편은 친구들과 관악산을 오른다고 싱글거리며 9시에 떠났다. 작은딸은 아르바이트를 한데다가 밤에 또 게임을 했는지 죽은 듯이 자고 있다. 

  혼자다. 그래 혼자, 이렇게 늙어가는 거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황정은, 다가오는 것들, 2020)     


  맞아. 뭐 하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지나가고 있지. 그래서 오늘은 늘어지게 침대에서 뒹굴거리기로 했다. 일단 양치질하러 화장실로 갔다. 돌아와 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할까 폰을 들었다. 


  메시지다. ‘시험문제 내다가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은샘의 문자가 와 있다. 전화를 누른다. 

  “그래 시험문제 많이 냈어?”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가 한 시간을 넘었다.


  나는 집값 떨어진다고 집을 안 샀다가 망했다는 얘기로 우는 소리를 했고, 은샘은 아이들이 오랫동안 빨대를 꼽고 있다고 죽는 소리를 했다. 

    

  “언니, 내가 우리 아들한테 ‘너는 남을 도와야 하는 팔자’라고 너무 얘기했나 봐요. 애가 아직도 이상적인 꿈만 꾸는 거 같아요.” 


  은샘은 독일에서 공부하는 아들 뒷바라지를 5년째 하고 있다. 그 아들이 대학졸업반인데, 이제는 소소한 일자리를 찾아 자기 옆에서 살아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들은 남극에서 지구의 대기오염에 관해 더 연구하기를 원한다며, 현실적이지 않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은샘은 자기 집 외에 재건축되는 아파트에 투자하고 있다. 아들이 돌아와 살 집까지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느라 명퇴를 못 했다. 게다가 공기업에 다니던 딸이 일이 맞지 않는다며 사표를 냈다고 한다. 공부를 더 해서 동시통역사가 되는 것이 꿈이란다. 수능 때보다 더 공부하는데 딸이 시험에 떨어질까 봐 불안해한다고 걱정이다.    

 

   “언니네 딸은 간호사라 이런 걱정을 안 해도 되잖아.”     


  그런 말마. 원래 간호사가 좋아서 한 게 아니라 먹고 사는 직업으로 택한 거라서 딴짓만 많이 해. 걔 어렸을 때, 그림 좋아서 그릴 때 그냥 둘걸. 미대 나와서 직업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내 딴에는 합리적인 조언을 했던 게 실수였던 것 같아. 살아가면서 자아실현을 위해 애쓰고자 하는 에너지 있잖아. 그게 딴 쪽으로 새는 것 같아. 공부는 거의 안 해. 그걸 쳐다보는 것도 힘들어...... 

  그래도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잖아...... 

  그래 중요하지. 암튼 자기 딸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거니까 오히려 잘 된 거야.   

  

  부모의 마음에 꼭 드는 자식이 있을까?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다. 괜한 욕심이다. 늙어가는 나 자신의 욕구도 잘 모르면서 훈수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은 왜 생길까? 자식이니 그러겠지. 


   “언니,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난주엔 더 심했지.” 

   

  그 말이 내 마음에 ‘쨍’하고 부딪쳤다.

  그래, 혼자 있다는 생각, 나도 들어. 안 드는 사람도 있을까? 그렇게 늙어가겠지. 늙어가는 이 경험이 처음이라는 걸, 그게 낯설고 외롭게 느껴진다는 걸 누가 알겠어. 그걸 나누기가 어렵지 않을까? 내가 느끼는 그 순간, 누군가가 공명해주지 않으면 ‘혼자’라고 느끼겠지. 아, 네가 그 말 해줘서 고마워. 바로 전에, 나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오랫동안 통화를 할 수 있었구나. 한 시간이 넘도록.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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