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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Jun 23. 2022

인동꽃 도둑질

  그날이 운수가 좋았다고 하기에는 어딘가에서 해묵은 찌꺼기가 올라오는 것 같다. 

  젬마와 바닷가에서 놀다가 발을 헛딛는 바람에 내 옷이 반쯤 다 젖었다. 할 수 없이 놀기를 멈추고 소금기가 절은 옷에 툴툴거리며 젬마네 가게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발에 신은 고무신이 물기에 미끄덩거리며 돌밭에 자꾸 넘어지려 해서 눈을 길바닥에다 내쏟듯이 부라렸다. 그때였다. 너른 돌 위에 깔린 멍석이 보였다. 멍석 위에는 갓 말리기 시작한 인동꽃들이 널려 있다. 


  인동꽃은 인동덩굴에 피어나는 꽃을 말한다. 마주난 초록 잎 사이로 처음엔 하얀 꽃이 쌍으로 피었다가 갈수록 노랗게 변한다. 그런데 먼저 피는 게 있고 나중에 피는 게 있다 보니 인동덩굴 안에는 노랗고 하얀 꽃이 항상 함께 있어 금은화라고도 한다. 내가 어렸을 1970년대에는 인동꽃을 인도 꼬장이라 불렀다.   

   

  노랗고 하얀 향긋한 인동꽃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고 섰는데 젬마가 멍석으로 다가앉았다.   

  

  “야, 이거 좀 가졍가게”   

 

  그곳은 바닷가에서 마을 쪽으로 돌아서는 외진 곳이었다. 젬마는 말 끝나기 무섭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 주먹 가득 인동꽃을 집어 들었다. 그걸 보자마자 나도 따라서 인동꽃으로 손을 뻗쳤다. 우리는 한 손으로 빤스(팬티)를 늘려서 거기에다 인동꽃을 담아 넣은 다음 팬티 고무줄로 훌훌 감았다. 남이 안 보이게 얼른 치마를 내리고 나서 멍석에 있는 인동꽃들을 다시 손으로 잘 흩어놓았다. 가슴에서는 심장이 쿵쿵 방아를 찧는 것처럼 벌떡거렸고 얼굴도 달아오른 것 같았지만 애써 아무 짓도 안 한 척 둘이서 손잡고 흔들며 걸었다.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무도 몰래 팬티 고무줄로 감겨있던 인동꽃들을 바구니에 담아 창고 구석에 두었다. 

    

  한 살 위의 젬마는 나보다 키가 컸고 훨씬 어른스러웠다. 처음엔 젬마를 따라 인동꽃 꿀을 빨아 먹으려고 했다. 좁은 꽃 통을 쪽쪽 빨면 미미한 단맛과 시원한 향이 입안에 감돈다. 워낙 많이 빨아댔기에 콧속으로 스며든 인동꽃 향기에 취해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인동꽃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젬마를 통해서였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까? 초여름쯤이면 젬마를 따라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인동꽃을 따고 함께 가게에 팔러 다녔다. 인동꽃은 잡목들을 붙잡고 감겨 올라가기에 어디에나 있었다. 그러나 따려는 사람들이 많아 우리는 이곳저곳 들판을 넘나들며 인동꽃을 찾아 나서야 했다.      


  우리 마을에서 인동꽃을 사는 가게는 딱 하나였는데 그 가게는 우리 마을 끝쪽인 성당을 지나서 한적한 곳에 있었다. 세 평도 안 되는 크기의 가게 안은 5촉짜리 알전구 하나 달랑 있어 어두침침했는데, 유리창으로 된 미닫이문을 열면 거친 소리가 나면서 겨우 열렸다. 지저분한 시멘트벽에는 길이 1m 정도 되는 직사각형 모양의 널빤지가 걸려있다. 그 안에선 지네가 그득하게 줄줄이 꽂힌 채로 말라 갔다. 한쪽 구석엔 이런저런 약초를 담아 놓는 마대 자루도 있었다. 우리는 4월과 5월에는 살마와 지네를, 6월 초에는 인동꽃을 팔았다. 얼마를 받았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용돈이 없던 그 시절에 쏠쏠하게 벌어들이는 수입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인동꽃을 훔치고 돌아온 뒷날, 젬마와 나는 함께 야산에 올라가 부지런히 인동꽃을 땄다. 등에 땀이 번질거리며 옷이 축축해지는 것도 잊은 채 보이는 족족 훑어 내렸다. 저녁쯤 되자 인동꽃이 제법 한 양푼 가득하게 모였고 집으로 돌아와 그 전날 훔쳐두었던 인동꽃과 뒤섞어 놓았다. 3일째 되던 날이었을 것이다. 젬마와 나는 젬마네 점방 앞에서 만났다. 우리는 큰맘을 먹고 인동꽃을 들고 그 가게로 갔다.     


  성당을 지나가게 되자 젬마도 나도 발걸음이 늦어지며 간이 더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종탑 높이 솟아오른 십자가를 보니 훔쳤다는 사실이 더 크게 가슴에 다가와 두방망이질 쳤다. 

  ‘훔치지 말걸’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걸 도로 가져다 놓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닌가. 둘이서 어찌어찌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한적한 가게 앞으로 다가섰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더러운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침침한 가게 안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들어가기를 주저하며 젬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젬마는 나를 보더니 애처로운지 먼저 미닫이문을 열었다. 드르륵거리며 문이 열리자 아주머니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왔다.      

  “인도 꼬장 가졍완댜?”


  대답을 들으려고 물은 건 아닌 듯, 아주머니는 어기적거리며 저울로 향했다. 가늘게 눈을 뜨고 저울 눈금을 읽더니 각자에게 값을 치러 주었다. 돈을 받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아주머니가 뭐라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우리가 돌아나가기도 전에 그냥 방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아주머니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누리끼리한 그 얼굴조차도 예뻐 보였다. 


  가게 문을 닫고 돌아서자 우리는 땅만 보고 열심히 내달렸다. 둘이 상기된 얼굴을 한 채 한달음에 젬마네 점방 안으로 뛰어갔다. 젬마네 점방에서 박하사탕을 사서 한 알을 입에 털어 넣는 순간, 이젠 자유다! 싶었다. 도둑질한 인동꽃을 털어버렸다는 안도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는 다행스러움이 사탕 한 알과 함께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싸아한 그 맛이 시원하면서도 달콤하게 감겨왔다.     

 

  젬마와 헤어지고 혼자서 돌길을 터덜대며 집을 향해 걸어갈 때였다. 사탕이 끈적하고도 들척지근한 뒷맛이 유쾌하지가 않았다. 꼭 쥔 내 손바닥에서는 역한 동전 냄새만 풍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뭘 털어버리기라도 할 듯이 집을 향해 나는 내달려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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