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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Aug 24. 2022

고요한 아름다움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로

22년 8월 22일 아침 8:15. 보르다 출발

1: 30분 론세스바예스 도착

보르다에서 론세스바예스는 16km다.


론세스바예스는 예약때 애를 먹었던 곳이다. 남편이 자기이름으로 예약을 하고 내 카드로 어렵게 지불을 끝냈는데 답 메일이 안 오는 거다. 그래서 남편이 우리말을 쓴다음 파파고를 돌려 스페인어로 바꾸고 이메일을 보냈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수도원이니까 바빠서 그럴꺼야. 일단 카드승인이 됐으니까 됐어) 였다. 그때가 3월말이었다.


서울서 떠나오기 며칠전 나도 드디어 산티아고에 대한 정보 수집에 들어갔는데 누구는 예약 날짜변경을 신청하고 그게 가능하다는 메일까지 받았다 한다. 아무래도 수상하다싶어 남편에게 보낸 메일을 열어달란 다음 복사해서 다시 그걸 우리말로 바꿔보니 얼토당토 않았다. 맙소사! (나는 예약되었다. 고맙다)라고 번역되다니...


다시 내 이름으로 예약일을 쓰고 지불했는데 아직 확정메일을 못 받았다는 것을 먼저 영어로 번역한 다음 문맥을 보고 스페인어로 바꾸고 카드지불내역서까지 보내자 드디어 남편이름으로 예약해도 되겠냐는 답메일이 왔다. 그럴동안 주고받은 메일이 4통이다. 예약일을 착각하면서..예약자가 누군지 잊어버려서..

남편은 가서 해도 될일을 호들갑떤다고 말다툼까지 했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하는데 목에 방울을 매단 주인집 소가 나를 쳐다본다. 마치 너 가니? 하듯이...

비가 부슬부슬 내려 모두들 우비를 입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열댓명의 사람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걷는다.

가랑비는 계속 내리는데 빗방울이 작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곳의 비는 늘 이런가? 우리나라처럼 쏟아진다면 걷기 힘들텐데 이렇게만 내린다면야 좋겠다.


양떼들이 리더를 따라 도로를 건너다 차가 오니 멈춰선다. 영리하다. 그러니 어느 곳에서나 리더가 참 중요한 것 같다. 잠시 더 걷다가 론세스바예스를 향하는 펫말이 보이기에 무릎을 굽혀 사진을 찍는데 하얀 말이 내게로 다가온다.

무서워서 얼른 길따라 이동하는데 이게 왠일, 말 3총사가 계속 우릴 따라 오는 게 아닌가? 아니 주황색 비옷이 무슨 의미길래 자꾸 스틱을 휘두르며 쫓아버려도 나를 쫓아오는 건가? 말 주인이 이런 옷을 입었을까? 한 20분쯤 쫓아오다가 그때야그만두는 걸 보니 그들의 경계선 너머인것 같다.

한번 길을 헷갈릴뻔 했는데 엘레나가 구글지도를 펴서  설명하며 제대로 가르쳐주었다. 어제 함께 잔 동료이다. 이렇게 의지가 된다.

걷다보니 한 청년이 쓰레기를 주우며 가고 있는게 보인다. 생장에서 받은 하얀 에코백에다.

그처럼 멋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를 보니 마음이 흐믓해지고 더욱 힘을 내게 된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오르다. 차량을 이용한 노천 쉼터가 나왔다. 이곳의 유일한 안식처다. 서서 먹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커피와 핫초코를 시켜서 둘이 나눠 마셨다. 나중에 걷다보니 알았다. 그때 마신 핫초코가 피로회복에 참 도움이 됐다는 것을. 그러니 그걸 파는 아저씨는 그냥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순례자를 돕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부슬부슬 빗 속을 계속 걷는다. 앉아서 쉴 데가 없다. 걸으며 나는 왜 이 길을 걷는가? 생각했다.

생각해봐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이 길을 걷기가 즐겁다는 사실 외엔.

많은 사람들이 선한 의지로 걸은 길이어서 그럴까? 그냥 좋다. 앞으로도 계속 이럴 수만 있다면...

정상 근처인가? 롤랑의 샘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달콤한 샘물... 신의 사랑이  저와같이 공평하게 내리겠지.


비탈진 곳에 뿌리를 박고 하늘로 향하는 나무들은 기도하고 있는 손들 같다. 그 속에서 뿌옇게 피어오르는 우연을 바라보며 고요한 아름다움이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고요한 아름다움... 저들은 비탈길에 서느라 땅속으로 울부짖듯이 사방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을텐데 바라보는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한참 머무르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그렇게 걸으며 수도원에 도착하다. 나이 드신 봉사자 분이 한국에서 왔다하니 반갑다며 옷을 펼쳐 보인다. 그 안에는 (평양에서 만나자)고 쓰여있었다. 얼마나 가슴이 찡하던지!


줄서서 오래도록 기다려 우리 차례가 왔다. 예약했다고 말하니 확정메일 보낸 것을 보여달란다. 자기네는 그렇게 밖에 못한다고. 핸드폰을 꺼내 메일을 여는데 안 열리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다행히 유심이 제대로 작동을 하면서 잘 열려주었다. 론세스바예스 예약을 확실히 하느라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저녁을 먹는데 각국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다. 음식이 올때까지 서로 기다려주고 물과 포도주를 권하면서 서로에 대한 배려 속에 이루어진 만찬이라 좋았다.

저녁 미사를 마치고 신부님의 특별강복으로 무슨 말인가 오래 한다. 무사히 도착하라는 뜻이겠지.

부엔 까미노를 끝으로 강복도 끝났다.


나도 여기에 온 수백명이 되는 모든 사람들도 무사히 순례를 마치기를~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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