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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Sep 08. 2022

까스트로 해리스에서 비빔밥을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까스트로 해리스

22.9.6.화(순례 17일차, 6시간)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까스트로 해리스(20km)


7:30, 빵과 우유, 커피로 아침을 마치고

미팅 포인트 알베르게를 떠나다.

공기가 많이 차가워다.


오늘은 까스트로 해리스로 떠난다.

그곳에는 비빔밥을 하는 알베르게가 있다고 은영 언니네(LA부부)가 알려주어서 무척 기대가 되는 곳이다.

닭의 전설(?)이 있는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의 성당



7:50, 앞에 보이는 먼 산이 붉게 물들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다보니 해가 뜨고 있다.

붉게 물든 언덕
아침 해가 떠오르느라 붉게 물든 구름


어제는 바람의 언덕이었는데, 오늘은 바람이 휘도는 넓은 평야다.


메세타 고원인지..

해발 900m가 넘는 광활한 평원에는 끝없이 밀밭이 펼쳐지고 밀밭 사이로 끊임없이 바람은 흘러가는데...


멀리 지평선엔 풍차들이 줄지어 돌고있다.


그렇게 언덕 길을 가고 또 가다. 지리하게 펼쳐지는 밀밭을 보니, 스페인이 예전엔 강국일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조그만 밭뙤기를 부치던 우리집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넓다.


우리집도 소꿉장난으로 농사 지었던 것은 아닌데.. 어린 나도 너무 힘들어 어른이 되면 농부는 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 어머니가 이 땅을 봤더라면 무슨 말을 했을까?



9:40. 돌탑의 십자가에서 쉬다.

사진 찍는 나를 보고 만세 불러주는 할아버지들


10시, 온타나스에 들어서다.

드디어 쉴 수 있는 까페가 등장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온타나스로

 

론세스바예스를 내려올 때는 사람들 간의 간격 차이도 있고 나무 뒤에 숨기도 쉬워서 누구나 가다가 아무데나 들어가 오줌을 누웠다.


그러나 평원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사람 간의 간격도 좁고 몸을 숨길 곳도 마땅한 곳이 별로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카페가 나타나면 뭐든 시키고 화장실에 가야한다.

그래봐야 까페콘레체 두 잔에 4유로면 끝난다.


커피를 마시고 온타나스의 성당에서 촛불을 밝히고 떠나다.

온타나스에선 457km 남았다



12:10분, 폐허가 되버린 성곽에 도착하다. 예전엔 성당이었을 것 같은 데., 순례자 병원로 쓰다가 지금은 멀리까지 가기 힘든 순례자들에게 알베르게로 제공되는 듯, 12베드가 있다고 한다.


누군가 기부를 많이 했는지 갑자기 종탑의 종이 흔들리며 종 소리가 퍼져나가기 시작하다. 그 소리를 들으며 붉은 철로 된 예수님을 바라다. 제단엔 지푸라기만 있어서 초라하고 슬프지만.. 마음은 고요해지다.



수도승 같은 사람이 끊임없이 나무 등걸을 긁으며 돌보고 있었다


무너진 성당에 세워진 예수님 상
고통스런 표정의..무사같은 옷을 입고.6



1:40, 까스트로 해리스에 도착하다. 오리온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야물딱진 한국인 여성이 한국 말로 체크인을 하고, 관련 설명을 하는데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이른 아침, 알베르게를 나오며


(한국인이세요?)

 (하하.. 그 말에 빵 터졌네요)


한국인이 운영하는 덕에 라면과 김밥도 사먹고 빨래 비누도 공짜로 얻어서 신나게 빨래를 해서 널었다.


저녁 7시,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빔밥!


은영 언니네와 얘기를 하다가 식당으로 들어가 비빔밥을 받아 열심히 섞었는데, 맛을 보니 뭔가 부족하다. 아 참기름이 없구나!

그래도 한국을 떠난지 20일 동안 주로 빵만 먹었던 터라 행복한 시간이었다.

비빔밥을 먹고 나서


식사 후 은영언니와 얘기를 나눴다. 니는

삶이 늘 기쁨으로 다가온다고..

욕심이 원래 없었을 뿐 아니라 성령 체험후 하느님과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듯 했다.


부러웠다.


나도 그녀처럼 더 이상 욕심이 없다고.. 있다면 하느님을 더 잘 알게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은 세상의 욕심에 차서 빛을 보지 못하나 보다. 

제대로 빛을 반사하려면.. 속을 비워야 거울처럼 되는 거 아닐까?

데 그게 어디 쉬워야 말이지..


밝고 맑게 빛나는 그녀의 얼굴이 새삼 달라보이다.


지구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듯이..

태양처럼 빛을 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그것이 신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런데.. 어떻게..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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