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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Sep 12. 2022

렐리에고스에서 다시 만난 해수스 할아버지

베르시아노스~렐리에고스

22.9.11.일(순례22일 차, 5:30소요)

베르시아노스~렐리에고스(20km)


7:45분 아침을 먹고 르시아노스 알베르게를 떠나다.


달은 아직 서쪽 하늘에 떠있고 새들만이 부지런히 들판을 날아다니는 아침, 동쪽에서는 해가 떠오르는데...

달이 지는 서쪽과 해가 뜨는 동쪽


오늘 길은 긴 플라타너스 길을 걷고 걷고 .

플라타너스 길, 이제 산티아고까지 350km남았다.


9시20분, 베르시아노스에서 7.5km 떨어진  첫 마을 엘 부르고 라네로에 도착, 신라면을 잘 한다는 레스토랑에 들어서다.

신라면이 5.5유로인데 갈은 소고기와 야채, 양념을 넣어 매콤하면서도 풍부한 맛이 나다.


라꼬스타 bar, 신라면과 햇반이 단정히 써있다.
맛있는 라면^^, 음식 맛이 좋고 분위기도 좋아..

엘 부르고 라네로 마을의 성당에 들러 잠시 기도하고 다시 발을 옮기다.

엘 부르고 라네로 마을의 성 베드로 성당

라네로 마을을 지나가는 길가 플라타너스엔 사람들이 손 뜨개를 한 덮개가 나무 줄기마다 덮혀있다. 플라타너스 껍데기가 벗겨져서 그런 것일까?.. 아무튼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튼실하다. 나무도 애정의 힘을 받은 것일까?

 

뜨개를 입힌 플라타너스들이 줄줄이 서 있다.


11시, 뙤약볕 속을 걷다가 숲에서 쉬다. 까마귀 소리 들리고.. 다시 걷다가 들판을 바라보며 귤 까먹고.. 나무 숲을 다시 맞딱드릴 때까지 플라타너스 길을 또 걷다.


 계속 이어지는 플라타너스길..나무 숲이 가로로 나타나 쉼터를 제공하다
다리로 수로를 건너다. 수로..대단한 기술력이다!


1:10에 렐리에고스에 도착다. 초라하고 작은 마을에 왠 알베르게는 이리 많은 지...

 엘비스 바에서는 엘비스노래가 흘러나오고.
곡식 저장고.                         멕시코인 해수스 할아버지


2:30. 오늘 이 파라다 알베르게에서는 동네 파티가 열렸는 지 남녀 성인들이 참새 떼처럼 모여 떠들어댔다. 매우 무뚝뚝한 주인인데도 동네 사람들은 잘 찾는 bar 인가..


이틀 전 떼라디요스에서 만났던 멕시코인 해수스 할아버지와 다시 한 방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8번이나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특별한 인연을 맺은 한국인 수진씨에 대해 얘기를 했다.


2019년 우연히 같이 걷게 된 수진씨가 탈진에 빠져 드러누운 것을 물과 과일을 줘서 힘을 얻게 했는데 생명의 은인이라며 수진씨가 깍듯이 고마워했다고.

그후로 함께 걸었고 지금은 딸처럼 생각한다고. 내년에 수진씨가 아기를 낳으면 자기는 또 할아버지가 된다고 진지하게 말했었다.


나는 8번이나 걷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이 길을 왜 걸으세요?)

(난 걷는 게 좋아... 2012년 퇴직하고 나서 걷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좋아졌어)


((나는 인생을 살면서 내가 뭘 원하는 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걸어요.. 알려달라고 하면서...))

(너무 뭘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 그냥 주위를 둘러보며 즐겨... 새소리, 공기, 평화로움 이런 것들을..

매일 느껴지는 이 행복한 감정을 즐기며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거야.


 어떨 때는 어려움도 있겠지. 그땐 그냥 그걸 해결하면 되는 거고...


그러다 집으로 돌아갔을 때 어느 순간엔가 답을 찾게 돼. 문득 내가 묻던 질문들에 대한 답이 내 가슴으로 들어오더라구.


그러니까 듣게 될 꺼야... 그냥 하루를 즐겨. 내게 주어진 그 하루를!)


어쩌면 하느님이 내게 내려주신 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오늘 이 편치않은 알베르게에 든 것도.

그래서 세 사람만 머물게 되고 상대방에 좀더 집중하게 된 것도.

 다 내가 매일 복닥대면서 기도하는 게 안타까우니까 그러는 걸 거다.


이제부터는 맘을 내려놓자.

성급하게 답을 구하기 보다 그저 하루를 즐기자.


어제 베르시아노스의 그 알베르게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잔디 밭을 바라볼 때, 맑은 하늘과 부드럽게 감기는 공기를 느끼던 그 순간.. 얼마나 만족스러웠던가!


그래.. 그런 순간에 만족하고 그저 감사하자.

그거면 충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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