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나세까~폰페라다~까까벨로스
22.9.17.토(순례 28일차, 7:50분 소요)
몰리나세까~폰페라다~까까벨로스(22km)
오늘은 고국을 떠난 지 한달 째 되는 날이다. 한국에서 산 three 유심이 늦게 개통되는 바람에 지금 껏 버텼으나 오늘은 꼭 교체를 해야 한다.
게다가 지난 번 레온에서 유심을 교체하려다 실패했기에 다소 걱정도 되어서 오늘의 목적지인 까까벨로스 가기 전에 중간에 있는 폰페라다에서는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보다폰 매장을 찾아가야 한다. 그 곳에서 유심을 바꿀 수 있다고 들어서다.
7:20분에 출발하니 렌턴이 없이도 걸을 만 하다.
깜뽀마을의 언덕에서 멀리 폰페라다 시내가 보이고..
마을과 떨어진 교회를 쳐다보며 큰 길로 들어서고 있는데 길가에서 짝짓기 하고 있는 달팽이를 보다.
아니, 달팽이는 생식기가 머리에 달려있나?.. 하기사 꼬리 쪽에 딱딱한 집을 달고 있으니 만나기 쉬운 앞 쪽이 낫겠네.
달팽이는 지금 그냥 짝짓기만 할까? 어쩌면 저런 접촉을 통해서 혼자가 아님을 느끼고 더 생기있게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은 아닐까?
종이 다를지는 모르지만 왼돌이물달팽이는 꼭 짝짓기를 하지 않아도 혼자서 새끼를 만들어낸다.
그러다 다른 개체를 만나면 짝짓기를 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개체들은 유전정보가 다양해지고 다양한 환경에서 잘 살아남는다.
이렇게 세대에서 세대로, 짝짓기를 통하여 살아가는 방법을 전달해왔다. 결국 세대간에 가장 강력한 정보전달 방법은 짝짓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그 과정을 통해 살아나갈 힘을 얻는 것은 아닐까?
한쪽이든 양쪽이든 ...
하기사 단 한순간만 본 내가, 저 고도의 행위에 대해서 뭘 얼마나 알아낼 수 있을까?
그나저나 동물마다 유전자를 교환하는 방법이 참 다양하구나.
8:58분, 폰페라다 입구에 들어서다.
구글 지도를 따라 큰 다리에 올라서니, 폰페라다 강이 보이고 뉘집 굴뚝에서는 아침을 만드느라 연기가 피어오른다.
나무 타는 냄새를 향해 내 코는 자꾸만 돌아가고..
9:30분, 지나는 길가 아무 바에나 들러 크로와상으로 아침을 떼우고 다시 서둘러 구글이 안내하는 대로 시내로 들어서다.
멋진 시계탑이 보이는데 저기가 성당 아닐까? 하는 순간 다른 길로 부리나케 내려가는 남편을 따라 갈 수 밖에..
한참을 내려가서 뒤돌아보니, 아이구야 저것은 기사의 성 아닌가?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읽고 거의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 기사의 성인데, 거길 지나쳐버리다니..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한참 시내를 돌아나가도 유심을 교체할 수 있다던 보다폰 매장은 보이지 않고, 교외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건 아닐까 은근히 걱정하는데, 덩치 큰 몰(mall)이 보이다.
몰 안으로 들어가 보다 폰 매장을 찾아 갔는데, 젊은 남자가 우리를 맞다.
유심을 살 수 있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단다.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세 가지 옵션 중에서 4주에 100G, 스페인 통화 무제한, 15유로 짜리를 선택했다.
지난 번 유심때는 통화가 제한되는 바람에 알베르게 예약하거나 동키서비스를 신청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어서, 이번에는 통화가 가능한 것을 선택해야지 했었다.
젊은 남자는 여권을 복사하더니 5분 만에 유심을 교체했다!
저번에 레온의 오렌지 폰 담당자는 20분 넘게 밍기적대다가 다운되었다며 나중에 다시 오라해서 다시 갔는데도 작업하다가 결국은 안된다고 그 난리를 쳤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차이일까?
아무튼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해서 유심을 교체해야 했던 것은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서이다.
그만큼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게 된 핸드폰.. 인터넷 연결 망..
고도의 짝짓기보다 더 많은 정보가 흐르는 지금 우리는 짝짓기가 필요할까?
세대에서 세대로의 정보 전달을 위해서는 더이상 필요없을 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전에 새로이 정보를 조합해내는 인공지능이 인류를 압도할 수도 있지..
어쨌거나 찾아다닌지 1시간 만에 원하던 일을 다 해결하고나니, 가쁜한 마음으로 까까벨로스로 향하다.
그나저나 나는 순례의 길을 왜 걷고 있을까? 지금 나는 잘 먹고 잘 걷고 잘 쉬는 속에서 평화롭고 기쁘게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내 영혼.. 본래의 나와는 어떻게 접촉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물음표뿐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