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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Sep 21. 2022

오 세이브로(성스러운 기분..)

라 뽀르뗄라~뽀이오

22.9.19.월(순례30일차, 7시간)

라 뽀르뗄라~뽀이(22km)


7:18분, 라 뽀르뗄라 알베르게를 나오는데 근처 록앤롤 바가 불이 켜져 있어서 아침 먹으러 들어가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여주인이 반갑게 문을 연다. 그녀의 미소에 기분이 좋아지는데.. 남편은 성심껏 츄러스를 만들고 아내는 서빙을 하면서 기부제로 운영하는 알베르게였다.
사람의 선의를 믿고 일하는 사람들이어서 일까, 참으로 친절하다. 그 친절에 마음이 따뜻해지다.

록앤롤 까페

기쁘게 먹고 나누며 매일을 생활하는 사람들..


그 부부는 어떻게 매일같이 지나가는 순례객에게 상냥하고 친절할 수 있을까?


그들이 하는 행위는 베품이요 사랑이라고 느끼게 했다. 돈을 벌면서도 베품을 느끼게 하다니... 나보다 어린데도 참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구나.


에르리아스의 소 떼.       출발전 기도하는 팀들

에르리아스에서 한가로운 아침을 맞는 소떼를 고 출발에 앞서 기도하는 팀을 만나다. 많은 인원의 순례팀은 처음 보는 것 같다.


 평화스 소 떼의 방울소리, 계곡의 물소리를 들산을 오르다보니 땀이 소르르 흘러 입 안으로 들어간다.


개를 데리고 온 순례객이 제법 보인다.
다소 험한 길도 오르고.              la faba카페


10시, 갑자기 나타난 마을 la faba카페에서 쥬스를 마시데 < 인생은 네 행복을 내쫓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엔 너무 짧아..> 라는 벽보가 보이다. 


정말 그럴까?

...

그렇다고 하더라도 함께 해야할 사람이 있다면, 어찌  할텐가?

...


산을 목초지로 바꿨는지...  드디어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서다.


산 위에서 퇴비 주는 사람을 보다. 45도 경사진 밭에서 열심히 퇴비를 뿌리는 저 사람도, 쥐를 물어나르는 저 고양이도, 가축을 키우고 땅을 파헤치는 일도, 먹고 살아가는 일이 중요한 것임을 일깨워준다.


그렇다. 생존에 필수적인 일들이 먼저 이루어진 후에 그 다음을 꿈꾸는 것이지..



11:28분, 해발 700m에서 1240m까지 오르다. 꼭대기에 오르고 보니 성당 하나가 눈에 들어오다.


여기가 오 세이브로인가?

안으로 들어가다.

오 세이브로 성당
오 세이브로 성배

많은 촛불이 켜있고 성스러운 성가가 울려퍼지는데...

내 눈 앞에 성배가 보이다.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다.


오  감사하나이다. 저를 이곳까지 초대해주셔서...

포도주를 성혈로 변화시키신 나의 하느님,

나의 주님이시여!


제가 왜 태어났는 지, 제 소명을 깨닫고

제가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소서.


저는 아직도 모르겠나이다.

너무 경쟁적으로 살아온 탓에..

본질적인 기쁨을 잃어버린 지 오래나이다.

하오니 알려주소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

성배를 바라다보며 당신의 피가 받쳐진 제단에 앉아있다고 생각하니

가슴 가득 뭉클함이 쏫아오르다.



오 세이브로의 순례자 상


그런데 왠 걸,

오 세이브로 카페에서 좀 쉬고 가자는 내 말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는 남편에게 화가 나면서 성스럽게 고양된 기분은 어디로 갔는 지 사라져버리고..


9km 넘는 길을 계속 걸어오면서 기도 하고 쉴 곳이 없어 지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느꼈던 성스러운 그 기분이 그렇게 빨리 사그라든다는 생각에 슬퍼지다.

~ 나는 왜 이리 얇은 걸까?


그러다 마지막 꼭대기에 오르니 뽀이이다. 한가로이 돌아다니는 닭들을 보며 점심을 먹다. 쉬고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다...

그냥 자책하지 말고 생각을 멈추기로 하다.


지는 해도 보고 밤 하늘에 별도 보면 됐지.

슬퍼하지 말자...



식탁을 돌아다니는 닭들                        간만에 보는 별
지는 해.              저녁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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