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로를 이탈한 지하철>
여러분은 꿈을 자주 꾸시나요? 전 거의 매일, 그리고 아주 생생하게 꿈을 꾸는 편이랍니다. 꿈속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 중 잠에서 깬 후에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바로 핸드폰 메모장을 켜서 기록해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 페이지씩 일명 “꿈 노트”를 작성하다 보니 어느덧 꽤 많은 양의 메모들이 쌓여있더라고요. 문득 제가 꾼 꿈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답니다.
저의 꿈 노트 그 첫 번째 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글은 제가 꾼 꿈을 바탕으로 각색을 통해 짧은 소설 형태로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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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볼일을 보고 나오는 길은 여느 날들처럼 피곤하기만 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건 지하철역까지 얼마 걷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지하철역은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골목을 하나 돌기만 하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지하철역은 다른 곳보다 유독 깊어 아래로 내려가는 긴 계단을 세 번이나 걸어 내려가야 했다. 지하철역은 내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일행들도, 나처럼 혼자인 사람들도 연인들도 퇴근길의 직장인들도 노인들도 가족들도 모두 저마다의 칸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머릿수를 대강 세어보며 앉아가기는 글렀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5분 뒤에 도착하는 오이도행을 기다리며 나는 자판기 음료를 하나 뽑아 마셨다.
지하철은 도착 예정시간에 맞춰 역으로 들어섰고 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의 한 칸에 올라탔다. 급하게 뛰어온 마지막 여자까지 지하철에 올라타자 곧 문이 닫혔다. 그리고 지하철은 선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지하철은 종종 지하를 벗어나 지상을 달리기도 했다. 어느새 어둠이 찾은 지상은 어두컴컴해졌다. 손잡이를 잡고 지하철이 서면 서는 대로 멈추면 멈추는 대로 몸을 맡기는 일의 반복.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선로를 앞에 두고 몸을 트는 지하철을 느끼며 문득 이 지루한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때, 환상과 같은 일이 현실이 되었다. 선로를 따라 머리를 오른쪽으로 꺾던 지하철은 그대로 선로를 벗어나 부드러운 속도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하철 창문 아래로 빛나고 있는 서울의 도시가 보였다. 어두운 밤. 내려앉은 어둠. 한강. 그 수면에 비쳐 일렁이는 높은 빌딩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교통체증의 고속도로.
일에 치여서 취업에 치여서 육아에 지쳐서 축 늘어진 어깨를 안고 올라탄 지하철은 더 이상 우리에게 똑같은 내일을 맞게 해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손잡이는 옷걸이로 쓰고 꽉 조인 넥타이를 풀어 그 위에 걸었다. 낮과 밤이 무의미해진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그저 잠시 눈을 붙이고 싶을 때는 바닥에 옷가지를 깔고 잠을 청했다. 가속하고 있는 지하철 바닥이 적당히 따뜻해서 오랜 불면증을 앓던 이도 깊은 잠을 취할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게 된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환영하며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옆자리 승객의 가방에 들어있었던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문득 창밖을 내다보았다. 똑같은 밤하늘에 똑같이 떠오른 달, 무심하리만큼 차가운 밤하늘 위로 반짝이는 별 하나가 떠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던 별. 그 별의 잔상이 아주 오랫동안 눈앞에 아른거렸다.
한편에서 티타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위로 익숙한 알람 소리가 끼어들었다. 어느새 지하철은 내가 내려야 할 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 이 짧은 여행의 종착지에 다다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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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지하철 타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이 날은 왜 갑자기 이런 꿈을 꾸었을지 신기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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