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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 Sep 24. 2022

2편. 세상을 크레파스로 칠할 때

<세상을 크레파스로 칠할 때>


여러분은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뜬금없이 어제 본 넷플릭스 영화 속 배우가 꿈에 나온 날에는 정말 아무런 감정도 없던 그 배우가 괜히 더 멋있어 보이는, 그런 경험이요. 저는 얼마 전 꿈에 한 가수가 나왔는데, 꿈에서 제가 그 가수의 콘서트장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가수가 이벤트라고 하면서 객석으로 내려와 저에게 자신의 앨범에 실린 노래를 불러주더라고요. 그 노래가 무슨 노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왜인지 그날은 그 가수의 노래가 듣고 싶어져 하루종일 그 가수의 노래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들었답니다. 거두절미하고,      


작년 어느 추웠던 겨울날 꾼 꿈을 바탕으로 쓴 저의 꿈 노트 두 번째 장을 여러분과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제가 꾼 꿈을 바탕으로 각색을 통해 짧은 소설 형태로 정리한 글입니다.     


*


책상 위로 달력이 보였다. 달력은 12월을 가리키고 있었다.     


창문 밖이 어둑해진 저녁 무렵, 아이는 방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책상은 벽과 마주 보게 놓여있었는데, 창문은 아이의 시야가 바로 닿는 곳에 나 있었다. 그 창문을 통해서는 베란다가 보였고 또 그 베란다의 통유리 너머로 집 앞 주차장이 훤히 보였다. 주차장 옆 도롯가의 벤치 두 개, 큰 나무 두 그루, 길을 따라 놓여있는 가로등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활짝 열어놓은 방문 너머로는 텅 빈 거실에서 돌아가고 있는 티비 소리가 들려왔다. 티비 속 기자는 연말을 맞이해 명동성당을 찾은 인파에 대해 전했다. 아이의 부모님은 동네에서 큰 식당을 하셨는데 장사가 잘 되어서 저녁 늦게야 들어오고는 하셨다. 때문에 아이는 자주 혼자 집에 남아있었다.  

   

익숙한 듯 티비 소리를 들으며 아이는 어느덧 완성된 그림의 마지막에 흰 크레파스를 사용해서 눈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그 무렵 거실에서 전화벨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크레파스를 내려놓고 거실로 나갔지만 전화는 아이가 수화기를 들자마자 끊어졌다. 다시 방에 들어온 아이는 흰 크레파스가 바닥에 굴러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떨어져 있는 크레파스를 줍고 의자를 당겨 다시 책상 앞에 앉은 아이는 별안간, 삐뚤빼뚤 그려진 벤치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는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아이가 흰 크레파스로 그려놓았던 건, 별표 모양을 한 떨어지는 눈의 결정들. 분명히 그뿐이었는데, 아이는 어느새 가로등 위에도, 앙상해진 나뭇가지들 위에도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노란 크레파스 빛의 가로등 불빛이 차례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는 기둥 모양의 탁한 쥐색 빛 그림자가 졌고 그 주변은 환하게 밝혀졌다. 아이는 검지손가락을 뻗어 가로등 헤드를 쓸어 만졌다. 그 조심스러운 손짓에 그 위에 쌓여있던 눈이 흩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본래의 교차점과 길이를 잃은 선들이 가득한 아이의 4절 도화지 속 세상은, 불이 꺼진 크리스마스 전구 장식을 형형색색의 크레파스 몇 개로 밝히고 지나가던 아이의 겉옷에 단추를 달아주고 하늘에 유독 밝은 몇 개의 별을 더 띄우는. 그런 세상이었다.     


언젠가 눈이 더 쌓여서 달이 낮게 떠오른 밤이 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작은 온기로도 포근해지는 겨울을 기대해볼 수도 있는.     


*  


전 손재주가 없는 편이라 그림을 정말 못 그렸거든요. 미술 시간이면 늘 제 뜻대로 손이 움직이지 않아 속상해하던 초등학생이었는데 그때 종종 ‘아, 누가 마법처럼 내 그림을 완성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었거든요. 어쩌면 그때의 꿈이 약 10년 뒤 다른 형태의 꿈으로 절 찾아온 걸까요?ㅎㅎ



*글과 사진의 무단도용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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