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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 Sep 26. 2022

4편. 할아버지와 반려로봇

<할아버지와 반려로봇>


며칠 전에 꿈을 꿨는데 딱 꿈에서 깨자마자 “아! 이건 로또꿈이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길몽이 맞았습니다. “뜻밖의 재물이 생기거나 그간 꿈꿔오던 일이 실현된다”라는 가슴 두근두근한 해몽을 보고 그날 저녁 정말 생전 처음으로 로또를 사게 되었죠.


그리고 토요일 저녁. 저는 에이, 설마~ 하면서도 로또당첨번호가 뜨기를 기다리다가 뜨자마자 서둘러 하나씩 맞춰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네, 5등조차 되지 못하고 깔끔하게 낙첨되었습니다.ㅎㅎ 순간 허탈감이 확 몰려오더라고요. 아니, 그렇게 좋은 꿈이라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한 거야? 하는 장난스러운 배신감과 함께 말이죠.


결국 길몽이든 뭐든 아무런 의미가 없구나,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제가 그 꿈을 꿨던 날을 한번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날이 일주일 중 유난히 힘든 요일이어서 그 전날 잠이 들기 바로 전까지도 한숨 푹푹 쉬면서 잠이 들었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딱 그런 꿈을 꾸게 되면서 이상하게 하루종일 “오늘 나에게 정말 행운이 있으려나?”하는 묘한 기대감으로 하루를 보내게 되더라고요. 버스가 제시간에 딱딱 오던 것도,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한번도 멈추지 않고 올라간 것도, 정말 사소한 것 하나하나 “역시 오늘은 행운의 하루야.”하면서 미소 지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비록 인생역전과 일확천금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준 그 꿈이, 몸이 지쳐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가 꿈꿔오던 하루를 실현해준 꿈이었구나! 생각을 하게 됐던 에피소드였답니다.     


이제 저의 꿈 노트 네 번째 장을 여러분과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제가 꾼 꿈을 바탕으로 각색을 통해 짧은 소설 형태로 정리한 글입니다.


*


햇빛이 쨍한 한여름이었다.


나는 반려로봇 연구소 소속 연구원이었다. 수명을 다한 반려로봇을 회수하기 위해 의뢰인의 집에 방문한 동료 연구원이 믿기 힘든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의뢰인의 집으로 향했다.


내가 만나게 된 의뢰인은 나이가 지긋한 노신사였다. 자식이 없는 그는 아내마저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지내고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우리 연구원들을 반기며 직접 우린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그리고 나는 곧 그것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대략 20년 전, 그러니까 내가 이 업계에 몸을 담기도 전에 우리 회사에서 출시되었던 구형 반려로봇이었다. 반려로봇의 수명은 길어봤자 7-8년이었고 무상 A/S를 진행한다고 해도 겨우 1-2년 연장되는 게 다였다. 하지만 이 의뢰인의 반려로봇은 무려 20년 동안 그의 곁을 지키다 수명을 다한 것이었다.


나는 의뢰인에게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 로봇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느냐 물었고, 의뢰인으로부터 어렵지 않게 그 방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의뢰인의 반려로봇은 여느 로봇들과 같이 대략 8년 전 수명을 다했었다. 하지만 의뢰인은 우리 연구원들에게 회수 연락을 주지 않고 고장 난 반려로봇과 함께 지냈다. 그는 평소처럼 반려로봇에게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고 하고, 차를 우리는 과정을 보여주고, 닷새에 한 번씩은 전용 세척 용액으로 정성스레 닦아주는 일을 반복했다. 며칠이 넘도록 집을 비울 때면 반려로봇 옆에 낡은 전화기 한 대를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종종 전화를 걸어, 전화가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면 일기를 기록하듯 그것에게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었다고 덧붙였다.


그 진심이 통했는지 몇 달이 지나자 반려로봇은 느리지만 한 단계씩 제 기능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이 반려로봇의 반응이 충분히 연구해볼 만한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했고, 의뢰인을 며칠간 설득한 끝에 그것을 우리의 연구실로 빌려올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금 완전히 멈춰버린 그를 재작동시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행했다. 타 연구기관에 자문을 구하기도 했고 완전히 다른 형태의 실험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우리는 결국 반려로봇을 다시 작동시킬 수 있었다. 의뢰인이 집을 비울 때 옆에 두었던 전화기가 관건이었다. 전화기 벨소리의 특정 파동이 다시금 반려로봇을 작동시켰다는 가정을 하고 실험을 진행했는데, 그 가정이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방식을 차용해 반려로봇에게 일명 인공 심장을 심어주기로 결정했다. 반려로봇의 인공심장은 큰 문제없이 성공적으로 심어졌고, 이내 우리의 자극 없이도 스스로 뛰기 시작했다.


가장 안정적인 박동 횟수는 우리가 설정한 초당 60-70회였지만 종종 변화가 생기기도 하였다. 그 박동수의 변화를 관찰하는 건 새로운 연구의 일부가 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패턴을 어느 정도 예측해볼 수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릴 때. 연구원들이 자신의 모델번호를 부를 때. 연구실이 연구원들로 북적거릴 때. 우리가 그것을 타 연구원들에게 소개해줄 때. 등등.


아직 이러한 변화의 원리를 제대로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출시될 반려로봇들에게도 적용된다면 분명 획기적인 반응을 이끌어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반려로봇은 며칠 전 다시금 의뢰인의 품으로 돌아갔고, 나는 할아버지의 품에 안긴 낡은 로봇의 뒷모습을 보며 오래오래 행복하라는 인사를 건넸다.



*글과 사진의 무단도용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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