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 옆에 있었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엄마는 늘 멀리 있었다. 나와 다른 사람, 내가 이야기해 봤자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남보다 못한 사람.. 그랬다. 엄마와 나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그리 살아와서 이젠 평행선이 익숙해져 버렸달까. 엄마가 필요한 순간마다 나는 도움을 줄 수 없는 엄마를 이해하기보단 그저 내 감정에 충실했고, 그만큼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서서히 마음의 문을 닫았다. 스스로 버티고 이겨내는 일들이 많아졌지만 가끔씩 울컥하고 묵은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다. 엄마에 대한 내 오래된 감정은 지저분하고 냄새가 났다.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것들이 내 속 깊은 곳에 가라앉았다. 들여다보기 겁났던 나는 그 감정들을 방치했다. 그게 내가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무미건조하게 딸 노릇을 했던 것 같다. 마음이 썩어가는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지난가을부터 나는 숨기고 싶었던, 모른 척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서 글을 썼다. 나에 대해, 엄마에 대해, 아빠에 대해 글을 썼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 가난이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글을 쓰며 느꼈다. 그것들을 더 이상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렇게 글을 쓰면서 엄마에 대해 조금씩 다른 시선을 갖게 됐다. 그러다 올해 1월 엄마가 크게 다치시고 수술을 하면서 엄마에 대한 오래된 내 감정을 깨닫게 됐다. 미워하고 원망했던 시간들조차 사랑이었음을 알게 됐다. 딱딱한 말투와 행동은 여전했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이 바뀌고 있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엄마를 챙기며 생각날 때마다 엄마에 대한 글을 썼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는 모르겠지만 내 안에선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이 피폐하다 느끼는 요즘 엄마 생각이 났다. 그동안 나 혼자 알아서 잘 해왔는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나 스스로 일어 서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 나 힘들어."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힘든 이야기를 엄마에게 털어놓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엄마가 어찌 반응하실까, 공감하지 못하고 또 역정을 내시는 건 아닐까, 내 마음이 다시 멀어지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정말이지 두려웠다. 엄마에게조차 공감받지 못한다면 나는 다시금 무너질 게 분명했다.
매일 아침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듣는다. 그러다 어제, 오늘 용기를 내서 내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내 마음을 읽어주셨다. 나는 스르르 녹아내렸다. 이야기 끝에 내가 글을 쓰고 있음을 고백했다. 엄마에 대한 마음도, 아빠에 대한 마음도 글로 풀어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내 마음이 지금은 비록 지옥이지만 엄마에 대한 마음만은 나아져서 이렇게 엄마에게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했다.
요즘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솔직함과 공감이란 생각을 한다. 나는 솔직하게 다가갔고 엄마에게 공감받을 수 있었다. 나는 살아났다. 전화를 끊고 엄마에게 내가 쓴 글들을 보내드렸다. 한참 후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 글 잘 썼네~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네가 쓴 글을 보며 또 한 번 그때로 돌아가는구나. 언제든지 얘기하며 훌훌 털고 지내자. 항상 자식도 남편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을 제일 중요시 해. 내가 건강하고 내가 행복해야 모든 게 다 순조로운 거니까.
엄마는 내 옆에 있었다. 늘 그랬다. 어쩌면 나만 그걸 몰랐는지 모른다. 내가 쌓아놓은 담 때문에 앞에 와있는 엄마를 보지 못했는지 모른다. 나는 바보였다. 오늘도 이렇게 글로 엄마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글의 힘은 위대하다. 이젠 나를 엉망으로 만드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돌아볼 시간이다. 다시금 글의 힘을 빌려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