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엄마가 신을 수 있는 신발이 하나도 없었다. 반짝이고 화려한 색의 굽 높은 구두를 좋아하던 엄마는 더 이상 그것들을 신을 수 없었다. 그런 엄마를 위해 크록스를 사드렸다. 처음 크록스를 신어본 엄마는 너무 편하다며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크록스에 꽂는 지비츠에도 관심을 보이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술 부위 부기가 빠지고 엄마는 목발 없이도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일상생활이 가능해졌고, 일도 다시 하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술한 발목이 시리다고 하셨다. 한여름에도 수면양말을 신고 생활하셨고, 발목에 온열팩을 대고 계셨다.
그렇게 여름이 지났고 가을이 왔다. 엄마 집 현관에 놓인 신발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일하실 때 어떤 신발을 신으시나 궁금해졌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굽 있는 신발이었다. 구두는 아니지만 뒷굽이 있는 신발이라 위험해 보였다. 설마 이 신발을 신고 일하는 것이냐며, 운동화를 신지 위험하게 왜 굽 있는 신발을 신느냐고 물었다. 그 과정에서 걱정되는 마음을 걱정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신발 사러 가자는 다정한 말을 하지 못했다. 화를 냈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엄마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와 분리하는 과정이 쉽지가 않다. 내가 완전히 안고 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적당히 떨어지는 것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 복잡한 마음을 자꾸만 화로 표현하게 된다. 늘 반성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오늘도 그랬다. 엄마는 수술 부위(안쪽 복사뼈)에 닿는 신발은 아파서 신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전에 사드렸던 운동화도 못 신는다고 하셨다. 엄마가 신을 수 있는 신발이 없었던 것이다. 가지고 있던 신발 중에 그나마 복사뼈를 건드리지 않는, 발이 편한 신발을 신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자초지종도 묻지 않고 나는 화부터 냈다. 걱정되고 미안한, 안타까운 마음을 바보같이 화로 표현했다.
수술한 엄마의 다리를 다시 바라보았다. 수술 자국이 선명한 다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만져주고 싶지만 용기 없는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신발장은 엄마가 좋아하는 구두로 가득했다. 이제 다시는 신을 수 없는 구두들을 버리지 못하고 신발장에 그대로 가지고 있는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못 신는 구두들을 정리하자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구두를 버리자고 하는 건 내가 엄마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이다. 신발장 속 구두들은 엄마의 지난날에 대한 추억이고 미련이다. 그것들을 마음대로 정리할 권리가 나에게는 없다.
늦은 오후 엄마를 모시고 시내로 나갔다. 시장 구석에 자리 한 오래된 신발가게로 들어섰다. 엄마를 앉혀놓고 굽이 없고 발볼이 넓은 단화를 몇 개 골라 바닥에 내려놓았다. 엄마는 수면양말을 벗고 신발에 발을 밀어 넣었다. 괜찮다던 엄마는 금세 까다롭게 신발을 고르셨다.
"수술한 발이 아파서 신을 신발이 없다고 우리 딸이 신발 사준다고 이렇게 데리고 왔네요."
신발가게 아주머니에게 엄마는 자랑하듯 말씀하셨다. 나는 말없이 신발을 몇 개 더 꺼내 엄마에게 권했다. 복사뼈에 닿지 않고 발볼이 넉넉한 신발로 두 켤레를 골랐다. 색이 고운 신발을 신고 엄마는 편하다고 하셨다. 이 신발을 신고 일하면 되겠다고 하셨다. 좋은 신발을 못 사드려서 미안했고 좋아하는 엄마 모습을 보면서 아침에 화를 냈던 게 후회됐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새로 산 신발 두 켤레를 현관에 놓으셨다. 그 모습이 아이 같다. 겨울이 오기 전 엄마를 모시고 신발가게에 한 번 더 가야겠다. 털이 달린 따듯하고 색이 고운 단화를 사드려야겠다.
엄마가 고운 단화를 신고 꽃길을 걸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