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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Sep 19. 2021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누굴 위한 걸까.

이번 추석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으면 어떻겠냐고 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엄마 혼자 준비해왔고 나는 결혼 전엔 3교대 근무로 명절에도 집에 못 가는 적이 많았다. 그리고 결혼 후엔 시댁부터 가게 됐다. 어느 한구석을 봐도 내가 그런 말을 꺼낼 입장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말을 꺼내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는 그 말을 기다렸던 사람 같았다. 차라리 아니라고 말해줬다면 내 속이 조금 편했을까. 엄마는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했다며, 20년 가까이했으면 오래 했다는 말을 했다.


동생은 지내고 싶다고 했다. 그런 동생에게 나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네가 돕는다 해도 사실 그동안 엄마가 혼자 준비 해왔고, 엄마도 다리가 불편한데 힘들지 않겠냐고. 더군다나 지금 올케와 조카는 자가격리 중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데 엄마 혼자 장을 보고 음식을 해서 차례를 지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나도 현실적으로 엄마를 돕기가 어렵다고.. 앞으로 계속 지낼 생각이면 네가 가져가야 되겠지만, 그건 올케와 충분히 상의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냐고. 구정과 추석은 지내지 않고 대신 아빠 제사를 좀 더 신경 쓰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동생은 서운하다고 했다. 누나는 신경 쓰지 말라며 엄마와 상의해 보겠다고 했다. 그 마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나도 서운하다. 하지만 모두가 다 편안한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와 이야기를 했고 지내지 않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다.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밝다. 그동안 엄마에게 짐이었구나.


나는 지낼 수 없고, 지내기 싫으면서 엄마는 했으면 했던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하다. 동생에게 잘난 척하듯 이야기를 했지만 나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아버렸다. 잘한 걸까. 가벼운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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