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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Sep 27. 2021

실수

그래도 괜찮다.


하나부터 열까지 틀린 말이 없다. 나도 안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다>는 것을. 하지만 순간 붙은 불은 금세 거세졌고 나는 초기진화에 실패했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며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실수를 하면서 크는 거라고. 실수를 반복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거라고. 실수를 알고 고쳐나가지만 끝내 어른이 될 때까지 그게 실수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래. 네 똥 굵다.


누가 모르냐고. 나도 다 안다. 그런데 실전에 약한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오늘도 으르렁 화를 내는 내 모습에 스스로 진절머리를 내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고작 한다는 말이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냐>니.. 그렇게 잘난 척하면 속이 좀 시원했냐.


오늘 실은 남편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다. 백신 2차 접종한 사실을 알렸음에도 상태가 어떤지 묻지조차 않는 엄마에게 서운했던 만큼, 나를 배려해 주고 챙겨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기운 없이 누워있다가 나도 모르게 " 나 챙겨주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오글거리지만 그 순간 진심이었다. 그 말에 감동을 받은 건지 몰라도 남편은 주말 내내 나를 챙겨줬고, 오늘 출근을 해서도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다. 컨디션이 어떠냐 물으며 무리하지 말라는 말끝에 "자기 챙겨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했다. 웃기기도 하고 살짝 귀엽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아름다운 글을 쓰려고 했다. 뭐 결국 이렇게 쓰긴 했지만. 근데 그 마음이 싹 가시게 입바른 소리를 저리도 해댄다. 씩씩 화가 난 마음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성향의 아이를 키우는 게 참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기다려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 했다. 오늘도 글동무님의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짐했건만 또 실패하고 말았다. 화내지 않고 넘길 수 있었단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화가 나는 와중에 남편이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냐>고 말하자 내 속에 화가 거세졌다.


결국 못난 마음을 글로 적는다.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본다. 마음이 가라앉고 있다. 차분해지고 있다. 그래. 화낼 수 있는 상황이긴 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지나치긴 했다. 그냥 말해도 될 것을 화를 내고 말았다. 알았으면 됐다. 내일 아침에 아이에게 사과를 하자. 엄마도 실수를 반복하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노력하려 한다고 솔직하게 고백하자. 아이는 언제나처럼 나를 안아주겠지. 그 생각을 하니 더욱 미안해진다.


내가 잘 못하고 있다고,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화가 났다. 그래. 그거다. 오늘도 잘하고 싶은 마음, 잘하려고 애쓰는 마음 때문에 탈이 났다. 남편의 말이 내 화를 돋우었던 게 사실이지만, 남편 말이 맞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다. 끝까지 언성을 높이지 않고 차분하게 말해 준 남편에게 고맙다.


글을 쓰다 보니 부끄러워진다. 나는 언제 철이 들까. 이미 오래전에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나밖에 모른다. 삐걱거리던 오늘 밤 일도 실은 별거 아니었다. 내가 조금 너그러워지면 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모두가 잠든 밤 오늘도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내일 다시 해보자, 다짐해 본다. 그래도 괜찮다고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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