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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Oct 01. 2021

코로나 시대의 생일파티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오늘은 큰아이의 10살 생일이다. 아이는 날짜를 세어가며 생일을 기다렸다. 작년보다 자란 모습의 아이에게 생일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물어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풍선과 케이크, 원하는 장난감 선물, 엄마의 편지를 받고 싶다고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고 싶다고도 했다. 코로나 상황이 좋지 않은 터라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생일파티를 하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일 듯싶었다. 생일파티는 안될 것 같다고 했더니 아이는 괜찮다며 등교 날인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다. 그 모습이 의젓해서 고마우면서도 짠했다.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아이라 해주고 싶었는데 올해도 이렇게 넘겨야 하는구나, 아쉬움이 가득했다. 생일파티는 못하지만 시간 맞는 친구들과 놀다 오라고 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땐 몰랐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금요일이 내 생일인데 ooo동 놀이터에서 4~6시까지 같이 놀 수 있어?>


아이가 문자에 <내 생일인데>라는 말을 넣은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내 생일인데>라는 말이 생일파티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어보지 않았던 친구들에게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너 금요일에 ooo동 놀이터에서 생일 파티해?"


오, 이런. 먹을 것을 준비하기도, 나눠먹기도 조심스러운데 그렇다고 아무 준비도 없이 그냥 놀다 오라고 하기엔 일이 커져 버렸다. 어째야 하나 고민 끝에 떡과 음료, 간식거리를 준비하기로 했다. 친구들이 하나씩 가져갈 수 있게 따로 포장을 해서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아무래도 부담이 덜 될 것 같았다.


오늘 아침 눈 뜨자마자 아이를 꼭 안으며 "생일 축하해." 하고 말해주었다. 미리 끓여놓은 미역국을 먹고 아이는 등교를 했다.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사이 주문해놓은 떡을 찾아왔다. 다른 간식거리들과 함께 종이봉투에 담았다. 몇 명이 올지 몰라 나름 넉넉하게 준비를 했다.


하교한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늘어놓기 바빴다. 급식에 미역국과 케이크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며 크게 웃었고, 반 친구들 전체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가 한층 업 되었다. 행복해하는 아이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됐다.


약속시간이 되어 아이는 놀이터로 향했다. 준비한 먹을거리를 카트에 싣고 놀이터에 가보니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나와 있었다. 먹을거리를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각자 흩어져서 먹고 놀았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신나게 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좋았다. 그래. 아이들은 이렇게 뛰어놀아야 하는데.. 코로나 이후로 이렇게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논 적이 없다. 당연한 걸 누리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놀이터에서 노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아이들이 짠하기도 했다.


"엄마. 얘가 OOO이야. 쟤가 ㅁㅁㅁ이고."


얼마 전 우리 아이에게 심하게 장난을 했던 친구들이었다. 같이 한번 놀아보고 싶어서 초대를 했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나보다 마음이 넓은 것 같아 대견했다. 그 친구들에게 야단치는 대신 우리 아이와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했다. 친구들은 네, 하며 대답했다. 하나같이 착했다. 놀이터를 찾아온 친구들 모두에게 준비한 먹을거리를 나눠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친구들과 노는데 내가 지키고 앉아 있을 이유는 더 이상 없었다. 생각보다 아이는 빨리 자라고 있고 친구들이 좋은 나이가 됐다는 걸 실감했다.


"엄마. 오늘 여러 친구들과 놀아보니까 친구들마다 장점이 있더라. 몰랐던 장점이 있었어. OOO는 원래 책만 봐서 재미없는 친군 줄 알았는데 놀다 보니 재미있는 친구란 걸 알게 됐고. ㅁㅁㅁ는 웃음소리가 경쾌하더라. 옆에 있는 사람 기분 좋게 해주는 웃음소리를 가졌더라고."


"오늘이 꿈만 같아. 엄마 고마워."


어둑어둑해질 무렵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논 아이는 행복하다고 했다. 같이 논 친구들도 헤어지며 초대해 줘서 고맙다고, 오늘 정말 즐거웠다는 말을 했다. 어쩌다 보니 놀이터에서 코로나 시대에 맞는 생일파티를 한 것이다. 큰 준비를 한 생일파티보다 훨씬 의미 있고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 딸 인싸네. 인싸야. 엄마 아빠는 아싸였는데."


놀이터 생일파티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한마디 했다. 그래. 우리 딸 인싸 인정한다. 그런데 내가 아싸인 건 왜 이야기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오늘 밤은 모든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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