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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Oct 03. 2021

동생의 특별한 능력

다 잘 될 거야. 걱정 마.


"매형. 말씀하시는데 죄송한데요."


예의를 갖춰서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게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상대가 이야기할 때면 눈을 맞추고 귀 기울여 듣고 리액션을 한다. 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며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남동생이 하는 이야기는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한없이 무겁지도 않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즐겁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씨가 보이고, 대화를 이어가는 스킬도 수준급이다. 아이들과도 잘 놀아준다. 좋아하는 놀이를 함께해 주고 웃긴 표정을 지어가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준다. 내가 엄마와 티격태격할 땐 중재자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다. 상처 받은 내 마음이 진정할 수 있는 말들을 어쩜 그렇게 쏙쏙 잘도 골라 이야기하는지 고마울 따름이다. 나에게 하는 것처럼 엄마에게도 잘하는 동생이다.


대부분의 남매가 그렇듯이 남동생과는 남같이 지낸다. 평소에 남동생과 자주 연락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가끔씩 이렇게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면 편안한 대화가 가능하다. 그건 남동생이 가진 남다른 대화의 기술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와는 달리 남동생은 어릴 적부터 서글서글하고 친구가 많았다. 인사성도 바르고 성격이 좋아서 아는 사람이 많았다.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올케에게는 비밀이지만 여자 친구들에게 편지와 선물도 참 많이 받아왔다.) 그런 동생이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동생은 여전히 발이 넓고 주변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학창 시절을 보낸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서 아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의 경조사를 진심으로 챙기고, 연락을 주고받고 지내며 만나면 예의를 갖추고 상대에 대해 기억해 주는 등 동생은 여전히 세심하게 인간관계를 하고 있다.


저녁을 먹으며 동생은 얼마 전에 만난 내 동창 이야기를 꺼냈다. "누나. oo이 누나 알지? 그 누나가 누나 안부를 묻더라." 암만 생각해 봐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중학교 2학년 겨울에 전학을 가서 3학년을 다니고 고등학교는 다시 타 지역으로 다녔다. 그래서 중학교 친구들이 별로 없다. 나와 친분이 없는 친구가 동생에게 내 안부를 물었다는 것도 의아했지만, 동생이 나보다 내 동창들을 많이 아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동생은 또 다른 친구의 이름을 대면서 가끔 만나면 내 안부를 묻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는 어울려 놀던 무리 중에 한 명이었다. 또 다른 친구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중학교 졸업 이후로 본 적이 없는 친구들이지만 동생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이름들을 들으니 반갑게 느껴졌다. 중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 ooo는 본 적 없어?"


나의 물음에 동생은 남편 눈치를 보며 슬쩍 웃었다. 그러더니 실은 동창회를 하면 그 친구가 나에 대해 묻곤 했다는 말을 했다. 그 친구가 묻는 말에 내 이야기를 했었다며 그 친구는 타 지역에 산다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갑자기 남편이 끼어들었다. 그 친구가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 나랑 사귀었던 애. ㅎㅎㅎ"

"아! 첫 번째 남자 친구! 그 친구 이름이 ooo야? 근데 그 친구가 어디 사는지 궁금해?"

"나이 마흔 먹어서 옛날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어. 중학교 때 잠깐 사귀었던 앤 데. 그럼 자기 ㅁㅁㅁ 얘기도 좀 해볼까? 걘 잘 있대?"


"매형. 매형이 불리한 것 같은데요.ㅎㅎㅎ"


어려운 가정 형편과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똘똘 뭉쳐 나밖에 안 보이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나와는 다른 동생을 보며 항상 가벼워 보인다고만 생각했다. 뭐가 저리 즐겁냐며 친구들 만나 노는 걸 좋아하는 동생을 한심하게 여겼었다. 동생이 고3 때 아빠가 돌아가셨다. 부끄럽게도 그 이후 동생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는 깊숙이 알지 못한다. 동생을 생각하면 늘 걱정되는 마음이 컸지만 표현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동생은 나보다 훨씬 잘 살아왔고 지금도 잘 살고 있다. 자기 삶에 충실하면서도 즐겁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동생이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기에 그들도 동생을 찾고 좋아하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동생이 멋지고 대견스럽다.


동생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나니 마음이 따듯해진다. 이직을 앞두고 있는 동생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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