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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Oct 06. 2021

졸업사진 찍던 날

둘째는 사랑


작은 아이가 유치원 졸업사진을 찍는 날이다. 오늘을 위하여 큰맘 먹고 원피스를 한 벌 샀다.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바쁜 수요일이지만 아이 옷을 다려주고 머리카락을 신경 써서 땋아줬다. 미소 짓는 연습을 할 겸 사진 몇 번 찍고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구두를 신겼으면 더 좋았을걸. 운동화가 아쉽다. 병설 유치원이다 보니 아마도 졸업사진 찍고 점심 먹고 돌아올 것 같다.


하원한 아이가 하는 말이 역시나 사진 찍고 점심 먹고 끝났다고 한다. 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 아이에게 묻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종알종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엄마. 근데 영아(가명)랑 나랑 옷이 똑같더라."


응?? 아이의 말에 놀라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새로 산 원피스인데 하필이면 영아 엄마랑 보는 눈이 같았나 보다. 그래서 기분이 어땠어?, 물으니 아이는 속상한 표정을 하곤 대답했다.


"뭐 괜찮았는데, 경탁(가명)가 영아랑 나랑 옷 똑같다고 놀렸어. 깔깔거리면서 계속 웃더라? 그리고 나보고 영아라 하고 영아한테 나라고 이름 불렀어."

"치. 걔는 성기(가명)랑 옷이 똑같더라. 근데 그것도 모르면서."


아이 말을 듣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껏 멋을 내고 갔는데 똑같은 옷을 입고 온 친구를 만나다니. 아무리 일곱 살이어도 당황했으리라.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너무나 귀여운 거다.


"엄마. 그리고 연지(가명)는 원피스 새로 샀는데 맘에 안 든다고 울었대. 아줌마 원피스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사진 찍는데 계속 안 웃는 거야. 선생님이 안되겠다 하면서 나랑 바다(가명) 보고 와서 연지 좀 웃겨보라고 하셨어. 근데도 안 웃고 그냥 찍었지."


하원 때 본 연지의 원피스는 연보라색의 레이스 원피스였다. 마흔 살 아줌마 눈에는 예뻐 보였는데.. 아줌마 스타일이었나 보다. 아이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연지한테 사진 찍을 때 왜 안 웃었냐고 하니까 연지는 무서움이 많아서 그랬대."

-"아. 사진 찍는 게 어색하고 부끄러웠나 보구나. 그래서 뭐라고 말해줬어?"

"나도 아기 때 그랬대, 맨날 울었대, 그 얘기 해줬지. 근데 지금은 안 그런다고. 아기 때 얘기하면 너무 창피하다고 했어. 무서운 게 아니라고 했어."

-"멋지게 말 잘 해줬네. 근데 아기 때 울었던 얘기하면 싫어?"

"아이. 그냥. 좀 그래."


오후 내내 작은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작은 아이도 엄마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았던 모양이다. 졸업사진 찍을 때 어떤 표정을 지었냐고 물어보니 아이는 조금은 과하게 웃는 표정을 보여줬다. 좀 과하면 어떤가. 일곱 살 유치원 졸업사진인데. 뭔들 안 귀엽겠나 싶다. 가을, 겨울이 지나면 곧 초등학생이 된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너무 빠른 것 같다.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작은 아이가 한마디 했다.



"근데 엄마. 구두 안 신은 애가 두 명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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