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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Oct 13. 2021

도련님 이야기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

"도련님. 애들 용돈을 왜 이렇게 많이 주세요?"


아이들 손에 쥐여준 봉투 안에 든 돈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마우면서도 부담이 돼서 도련님과 동서에게 물었다. 동서가 도련님을 힐끗 보더니 대답했다. "용돈을 제대로 준 적이 없어서 챙겨주고 싶은가 봐요." 도련님은 말없이 머리를 긁적이며 서성거렸다. 그게 추석 연휴 때 일이다. 


큰아이 생일 며칠 전 저녁, 도련님에게 연락이 왔다. 언제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이미 큰아이와 선물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다. 아이가 원한 티셔츠를 사러 백화점에 갔다며 사진을 여러 장 찍어서 보냈다.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알려달라고 했다. 도련님과 동서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느꼈다.


지난 주말 도련님 네가 다녀갔다. 큰아이 선물을 주겠다고 들린 것이다. 꼬맹이 조카의 방문으로 우리 아이들은 들떠 있었다. 꼬맹이 조카는 그새 또 자란 것 같았다. 얼마 전 봤다고 울지도 않고 볼을 만지고 배를 쓰다듬어도 "잉" 소리를 내지 않았다. 동서는 큰아이에게 선물을 건네주었다. 아이는 갈아입고 나와서는 무척 마음에 든다 했다. 내가 봐도 사진보다 훨씬 예뻤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꼬맹이 조카는 아이들이 알아서 잘 돌보고 있었다. 도련님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세상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옛날처럼 그렇게 다 모였으면 진짜 힘들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도련님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 도련님 철들었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도련님은 결혼하고 진짜 달라졌다. 시댁에 가면 도련님은 항상 자고 있었다. 밤에 친구들 만나러 나가서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와서 다음날 낮까지 잠을 잤다. 명절 연휴에도 마찬가지였다. 음식 준비를 도와주기는커녕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신혼 때는 철없고 눈치 없는 도련님으로 인해 부부 싸움까지 한 적도 있었다. (남편은 기억 못 할지도 모르겠지만) 도련님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얄미울 때가 있었다. 언제 철드나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 도련님이 결혼하고 아빠가 되더니 철이 드나 보다. 형수님 명절에 힘드셨겠다며 말을 하는 걸 보니 말이다. 


결혼 전에 함께 살았던 형제이지만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형제가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부모님의 마음도, 형의 마음도 알 것 같다는 말을 꺼내는 도련님이다. 그런 도련님을 남편은 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눈다. 동서와 나도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동서는 차가 너무 밀려서 도련님과 다음엔 자고 가자는 말을 했다며 웃었다. 내가 불편하진 않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좋았다. 하긴 꼬맹이 조카 데리고 하루에 차를 왕복 4시간 가까이 타는 건 너무 힘들 것 같다. "그래. 동서. 다음엔 잘 준비해서 와." 하자 동서는 웃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오예!" 하며 좋아했다. 


도련님 네가 돌아간 뒤 선물 받은 티셔츠를 정리하며 다시 보는데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기모 티셔츠라 그런지 가격이 사악했다. 추석에도 용돈을 많이 줬는데 생일 선물까지 돈을 너무 많이 쓴 것 같아 고마우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동서에게 조심해서 잘 가라며 인사하는 김에 티셔츠가 너무 비싸다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 생일 선물을 처음 챙겨주는 거라 잘해주고 싶어 했어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형님.



도련님도, 동서도 그 마음이 너무 예쁘다. 

도련님 고마워요. 동서. 고마워. 다음엔 꼭 자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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