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닐라라떼 Oct 21. 2021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결혼과 임신, 출산.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육아 속에서 단 한 번도 엄마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언제나 무덤덤하게 혼자 견뎠고, 결국 해냈다. 유산을 했을 때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출산을 했을 때도 병원에 손님처럼 온 게 다였다. 몸을 풀러 다들 친정에 간다는데 나는 산후조리원을 나서자마자 혼자였다. 친정이 있지만,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친정은 지금껏 없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은 없었다. 스무 살 때부터 나와 살면서 혼자가 더 익숙해졌고, 그만큼 엄마와 멀어졌다. 현실에 찌든 엄마에게 도와달라 할 수 없었다. 일찌감치 철이 들어버린 나는 아마도 엄마를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았던 것 같다. 괜찮을 줄 알았다. 나 혼자서도 잘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혼자서 잘 해왔으니, 결혼도, 임신도, 출산도 그런 것처럼 육아 역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 하는 육아는 매일 같이 나를 울렸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를 무너지게 했다. 엄마 노릇을 쉰 적이 없다. 누구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단 하루도 내 손을 떠나 나 없는 곳에서 지내본 적도, 자본 적도 없다. 쉬고 싶어도 나에겐 갈 친정이 없다. 내가 도움받을 친정이 없다는 사실은(엄마가 있지만, 도움받을 엄마가 없다는 게) 항상 목 안에 걸린 가시 같았다. 보이진 않지만 쿡쿡 찔러대며 나를 불편하고 아프게 했다.


그럴수록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내 결핍을 이겨내고, 이런 나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잘하고 있는 건지, 이게 맞는 건지조차 알 수 없지만 내 방식대로 여태껏 엄마 노릇을 하고 있다. 지금도 종종 한 번씩 무너져 내린다. 주저앉아 울곤 한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 내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고 있다. 


나는 이렇게 혼자 아등바등 열심히 하는데 아이들이 조금만 나를 편하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이들이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도움받을 친정도 없는데, 나 혼자 이렇게 사는데 하늘도 참 무심하다 생각했다. 엄마가 미웠다. 아니, 친정의 현실이 밉고 싫었다. 나도 엄마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싶고, 가끔씩 친정에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뒹굴하며 쉬다 오고 싶었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겠지. 그 사실이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한다. 


내가 하는 것만큼 아이들이 잘 클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힘에 부치기 시작하자 짜증을 내고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후회하면서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 하기 싫은 날이 많아졌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이제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언제나 한결같이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나를 사랑해 주고, 내가 지금 이대로 좋은 엄마란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내 결핍만큼이나 아이들을 향한 기대치가 크다는 것도 인정하게 됐다. 힘을 빼고, 지금처럼만 해도 아이들은 충분히 잘 자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제나 잘하고 있다는 말이 고팠던 것 같다. 인정욕구가 강한 아이에게서 어린 나를 만난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육아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걸어온 엄마의 길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다. 엄마가 필요했던 만큼, 가끔씩 쉬러 가고 싶은 친정이 그리웠던 만큼 이젠 내가 아이들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졌다. 잘하는 엄마가 아니라 편한 엄마, 완벽한 엄마 대신 실수하는 엄마, 아이들과 말이 통하는 마음 따뜻한 엄마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지금처럼 아이들이 내게 손을 내밀 때면 언제든 잡아줄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도련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