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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Oct 23. 2021

11번째 결혼기념일

고마워, 나랑 살아줘서

별: "엄마. 그거 보면 안 돼?"

봄: "뭐?"

별: "엄마, 아빠 결혼식 영상."

봄: "엄마, 보자. 보자."

나: "그래. 보자."

남편: "난 안 볼래."

1호, 2호: "아 왜~ 아빠~ 같이 보자~~"

남편: "아빠는 오글거려서 못 보겠어."


우리의 결혼식 모습이 담겨 있는 영상이다. 매년 10월 23일이 되면 다시 본다. 영상을 보면서 11년 전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영상 속에는 젊고 예쁜 나와 남편이 있다. 어머님도 참 고우시고 아버님도 젊으시다. 도련님과 내 남동생도 어쩜 저리 아기 같아 보이는지. 결혼식 영상 속에서 다른 가족들과 친구들의 예전 모습을 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병원 다닐 때 함께 근무했던(지금은 연락을 잘 못하고 지내는) 후배들의 모습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내가 큰 소리로 웃자 아이들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사촌 막내 도련님의 모습을 보고 안 웃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연애하느라 바쁜 도련님이 11년 전 영상 속엔 앳된 중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련님에게는 흑역사일 것 같은데 내 눈에는 마냥 귀여웠다. 돌아가신 시할머니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11년이란 세월이 사람을 참 많이 변하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우리 서로 아껴주고 행복하게 살자.>


봄: "꺅~~ 오빠라니!"

별: "오빠야? 오빠라고 한 거야?"

나: "으악. 오빠라니."


맞다. 오빠라고 불렀었다. 그랬었다. 영상 속 나는 긴장했으면서도 생글생글 웃으며 "오빠"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아이들은 오빠라고 했다며 난리가 났다. 뽀뽀하는 장면을 보고도 꺅꺅 거리고 야단법석이다.


봄: "오빠, 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자 했으면 싸우지 말아야지요."


그러게나 말이다. 결혼할 땐 매일매일이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지. 사는 게 뭔지 처음의 마음을 잊고 서로 부딪히고 싸우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11년이 지났다. 오글거리고 부끄럽다고 하던 남편도 어느새 와서 함께 영상을 보고 있었다. 큰아이는 영상 속 아빠가 이상하다며 낯설어했다. 지금보다 10킬로나 적게 나갔으니 진짜 말랐었다.


남편: "나는 이쯤에서 그만 봐야겠다."


남편이 서둘러 일어났다. 다음 장면은 남편이 축가를 부르는 모습이다. 남편은 싸이의 <연예인>을 불렀다. 춤까지 춰가면서. 지금 보니 음정과 박자 실수도 있고, 노래도 그리 썩 잘 부르진 못했다. 춤도 완벽하진 않았다. 그런데 11년 전엔 진짜 멋있게 보였다. 아이들은 저게 뭐냐고, 아빠 왜 저러냐며 좋아했다. 큰아이는 결혼식 전체에 대해 관심을 갖는 반면, 작은 아이는 영상을 보는 내내 반짝이는 것들에 관심을 보였다. 드레스와 메이크업, 귀걸이 등에 대해 질문했다. 자기도 저런 드레스를 입을 거라고 했다.



영상 속 남편은 결혼식 내내 웃고 있었다. 나는 중간중간 긴장한 모습이 보였지만 남편은 입을 헤 벌리고 계속 웃고 있었다. 영상 속 웃는 남편 얼굴이 보기 좋아 나도 따라 웃었다.


나: "자기. 결혼식 때 나보다 더 웃었었네? 그렇게 좋았어?"

남편: ........ (못 들은 척 눈을 감아버림)


남편의 양 볼을 잡아당기며 웃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도 많이 웃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혼기념일 날 아이들 덕분에 결혼식 영상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들이 언제까지 이 영상을 다시 보자고 할지 모르겠다. 당장 내년부터 큰아이는 관심 없어 할지도 모른다. 가끔 한 번씩이라도 다시 보면 좋을 것 같다. 촌스럽고 오글거릴지라도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말이다.



별: "엄마. 엄마 예쁘다. 엄마는 저때로 돌아가고 싶어?"

: "저 때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지. 그런데 돌아가면 너희가 없어. 그래서 지금이 더 좋아."

봄: "엄마. 지금도 예뻐."



평범하면서도 행복했던 11번째 결혼기념일이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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