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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Nov 02. 2021

남편의 자전거 여행

소중한 사람

그가 떠났다. 눈을 떠 보니 이미 떠나고 없었다. 요란하게 굴어도 되는데 혹시나 잠귀가 밝은 내가 깰까 봐 아주 조용히도 떠났다. 그의 빈자리를 보며 일기예보를 들었다. 어제보다 기온이 떨어졌다는 말에 옷장을 열어보았다. 역시나 두툼한 외투는 챙겨가지 않았다. 하여튼 말 안 듣기로는 일등이다.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는데 찬장에 메모가 붙어 있었다. 내 눈높이에 맞춰 붙여 놓은 그의 배려가 느껴졌다. 자유로이 떠나는 발걸음이 못내 미안했나 보다. 아이들과 맛있는 걸 사 먹으라고 금일봉을 남겨두고 떠났다.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이는데 때마침 그에게 연락이 왔다. 잘 다녀오겠다는 말을 몇 번째 하는지. 일주일 휴가의 절반을 자전거 여행으로 쓰겠다는 그였다. 자유를 주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생각지도 않는 그에게 섭섭함을 느꼈다. 세상 쿨한 아내인 척 다녀오라면서도 그런 내 마음을 끝까지 숨기지 못했다. 지난 밤 그는 자전거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글을 쓰는 내 옆에 앉아 미안한 눈망울을 하고선 "내일 영화 보러 갈까?" 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아이처럼 설레던 모습이 떠올라 아니라고, 됐다고 그냥 예정대로 다녀오라고 했지만 그는 한동안 말없이 내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미안한 마음을 집안 곳곳에 남겨두고 그는 떠났다. 아이들을 챙기고, 밥을 차리고, 집안일을 하며 틈틈이 캘리를 하는 내 일상은 어제와 같았지만, 그가 없는 오늘은 어딘가 달랐다. 이 감정이 뭘까. 춥지는 않을까. 아침은 먹었을까. 혹시 다치지는 않았을까. 잔소리라 여겨질까 봐 연락은 하지 않았지만 오늘 하루 내 머릿속엔 그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로, 인천으로 곧잘 다녔지만 이렇게 며칠 일정으로 떠난 건 처음이다. 그가 사진을 보내왔다. 쭉 펼쳐진 자전거 도로 뒤로 흐르는 강물이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평화로워 보이는 사진이었다. 



"엄마. 내가 배가 고픈 줄 알았거든. 뭔가 허전한 느낌이 계속 드는 거야. 그게 왜 그런지 이제 알겠어. 아빠가 없어서야."


아이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그는 나에게 참 소중한 사람임을 말이다. 더이상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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