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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Nov 10. 2021

엄마와 나의 거리

거리두기

일기예보에서 춥다고 옷을 단단히 입으라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온 식구가 집안에만 있다 보니 이렇게 추운 줄 몰랐다. 늦은 오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변해버린 바람결에 놀랐다. 옷깃을 여미며 겨울이 왔구나, 실감했다. 그리고 엄마를 떠올렸다. 요즘 엄마에게 전화를 자주 드리지 못했다. 아이들이 아프니 여유가 없었다. 낙엽을 치우느라 정신없이 바쁘다는 이야기를, 날씨가 추워지니 다리가 시리고 아프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드릴 수가 없었다. 나도 안다. 그건 핑계라는 걸 말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같았다. 그 목소리로 똑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날이 춥다고, 낙엽이 많아서 치우기 힘들다고, 그리고 다리가 시리고 아프다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무거웠다. 때로는 회피하고, 때로는 화를 냈다. 꽤 오랜 시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 그 방법이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됐다. 회피하면서 마음 불편해하고 죄짓는 기분을 가질 필요도, 그렇다고 엄마에게 화를 낼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거다. 엄마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드렸다. 그 끝에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일하시라는 말을 짧게 전했다. 그리고 핫팩을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인가 보다. 이번 주말에 엄마 생신을 챙겨드릴 예정이었는데 아이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미루기로 했다. 예전의 나라면 이럴 때 엄마는 뒷전이고 아이들만 챙기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괜찮다는 엄마의 목소리에 스며있는 아쉬움까지 보느라 버거웠다. 언젠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네가 해준 게 뭐가 있냐."라는 말을 던질 엄마란 걸 너무나 잘 알기에 결국 마음에 탈이 나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거기서 끝냈다. 아무 감정을 담지 않았다. 그게 될까 싶었는데 의외로 쉽게 됐다. 밖이 너무 추워서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집안에서 통화를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통화를 끝내고 핫팩을 주문했다. 내일 들어갈 거란 말을 엄마에게 전했다. 고마워, 하고 엄마는 짧게 답했다. 


깊숙이 들어가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이. 그래서 더 멀어지고 마는 그런 사이. 엄마와 나는 그렇다. 이제 알겠다. 엄마와 나의 거리는 딱 이 정도가 적당하다는 걸 말이다. 세상 모든 모녀 사이가 좋진 않겠지. 다른 나무들보다 일찍 잎이 떨어져서 휑한 단풍나무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겨울이다. 조금은 무미건조하면서 평온한 날들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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