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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Jan 23. 2022

엄마와 나

딱 지금처럼만

"핀 빼는 수술을 해야 한단다. 수술을 하래도 걱정이네."


작년 1월, 엄마는 다리 골절로 핀을 박는 수술을 하셨다. 몇 달간의 입원 생활 후 물리치료를 받으셨고, 어쩔 수 없이 일터로 복귀하셨다. 그놈의 '먹고사는 일'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엄마를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앞선 나는 혼자 속앓이를 했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CT를 찍어보고 뼈가 다 붙었으면 핀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자는 말이 나온 모양이다. 엄마는 병원 가기 전부터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이 많고 미리 걱정을 하는 건 다름 아닌 엄마를 닮은 거였다. 젊은 시절 엄마는 걱정이 없는 사람 같아 보였다. 밝고, 활기차고, 목소리 크고, 낯도 가리지 않는 엄마는 긍정적이고 걱정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그건 엄마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 엄마 스스로 노력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내가 꼭 닮았다. 내게 늘 예민하고 이상하다고,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냐고 말하던 엄마는 실은 나처럼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핀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려면 다시 입원을 하고 여러 날을 쉬어야 할 텐데 일터에서 사정을 봐줄지 모르겠다는 게 엄마의 주된 걱정거리였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이 되면서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일을 하지 않고 쉬실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탓하며 나 스스로를 나쁜 딸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 한다. 걱정하는 엄마에게 우선 CT를 찍고 나서 생각해 보자고 했다. 뼈가 아직 다 붙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니 기다려보자고 했다. 뼈가 다 붙었다고 해도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건 아닐 테니 엄마 일터 사정을 보고 날짜를 잡아보자고도 이야기했다. 


엄마를 따라 내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말이 빨라지면 꼭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엄마의 욱하는 감정의 불꽃이 튀기라도 하면 졸지에 나는 나 혼자만 잘 사는 딸년이 되기도 했다. 그걸 알기에 이번만큼은 다른 결과를 내고 싶었다. 엄마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엄마도 수긍했다.


며칠 전 CT를 찍었다. 예상대로 뼈는 아직 다 붙지 않았다. 제멋대로 조각이 나 그렇게 애를 태우더니 붙는 것도 참 요란스럽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하나 하던 엄마의 걱정은 뼈가 아직도 안 붙어서 큰일이다,로 바뀌었다. 


"2달 후에 다시 검사하자고 했으니까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 지금 걱정하지 말고."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한숨이 느껴졌지만 애써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모두 잘 되어가고 있다. 느리지만 엄마의 뼈는 붙고 있는 중이고, 나는 엄마와 다투지 않고 이야기를 끝냈다. 글을 쓰고 캘리를 하는 게 좋다는 말을 여전히 엄마 앞에 꺼내놓지 못하지만, 첫 공모전에서 입선을 했다는 말은 하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엄마와 나 사이에 아무 일 없이 이렇게 시간이 흘러갈 수만 있다면 말이다.


엄마와 나 사이는 여전하다. 다른 모녀들처럼 가깝지도 않고, 그렇다고 멀지도 않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엄마에 대한 기대와 서운함을 내려놓았다. 예전에 비해 지금은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상태다. 엄마도 편안했으면 좋겠다. 엄마와 나의 관계가 그저 지금처럼만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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