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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Jan 15. 2022

달달 달달

아빠가 떠오르는 순간


달달 달달


멀리서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바로 경운기 소리다. 치과 예약시간이 다 되어 급히 가던 길이었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불현듯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에 대한 기억도, 함께 나눈 추억도 거의 없지만 살아가면서 이렇게 아빠가 떠오르는 순간을 만난다.


처음 동네에서 경운기를 만난 날은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그대로 서서 바라봤었다. 경운기를 처음 본 아이들은 저게 뭐냐며 그저 신기해했었고, 나는 아빠를 떠올리며 여러 감정을 느꼈었다.



달달 달달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모자를 눌러쓴 아빠가 저 멀리서 경운기를 몰고 오신다. 아빠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 있다. 소 먹일 풀을 베어 경운기 가득 싣고 폼 나게 경운기를 몰고 오신다. 그리곤 우사 뒤에 경운기를 세워두신다. 엄마가 미리 타 놓은 미숫가루를 냉장고에서 꺼내 아빠에게 드린다. 아빠는 말이 없다. 아빠의 표정이 궁금하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달달 달달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순간에도 아빠는 경운기와 함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는 운전면허가 없었다. 평생 경운기만 몰다 가셨다. 등굣길 마을버스를 놓치기라도 한 날이면 아빠는 경운기에 나를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주셨다고 한다. 물론 나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달달 달달


어린 나는 아마도 지각하면 안 된다고 보챘을 거고 아빠는 경운기를 최고 속도로 올려 달리셨을 거다. 그래 봤자 달달 달달 떨리는 소리가 더 커질 뿐 여전히 느렸을 거다. 그래도 아빠의 경운기 덕분에 지각은 면했을 거다. 나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을 거다. 준비물을 두고 간 날이면 엄마는 아빠에게 경운기 타고 갖다 주라고 하셨단다. 아빠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또다시 경운기 시동을 걸었을 거다.



달달 달달


떨리는 경운기를 타고 가면서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경운기 떨리는 소리에 파묻혀 다른 소리도 잘 듣지 못했을 텐데. 느리게 지나가는 풀과 나무와 새를 과연 아빠는 보셨을까. 경운기가 너무 느리다고 때론 속상해하지 않으셨을까. 남들 다 타는 자동차를 타고 싶지 않으셨을까.



달달 달달


경운기 소리를 들으며 아빠를 생각한다. 아빠에 대한 나의 감정이 조금은 변한 것도 같다. 아빠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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