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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Jul 27. 2022

복이 많은 사람

바로 저예요, 저.

"전화 왔다!!"


만 하루가 지날 무렵에서야 어머님에게 전화가 왔다. 드디어 연락이 왔다. 


"서운했겠다. 우리 며느리 서운했겠어. 그치?"

"네, 서운했어요."

"그치. 서운하지. 어쩜 내가 우리 OO이 생일을 잊어버린 거 있지. 엊그제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휴. 지금 생각이 났지 뭐야. 많이 서운했겠어."



매년 생일 아침마다 어머님은 내게 전화를 하셔서 생일 축하를 해주시곤 했다. 생일 날 만큼은 기분 좋게 지내야 한다고, 그래야 한 해가 무탈하다며 마음 편히 지내라고 말씀해 주시곤 했다. 그런 어머님의 축하를 받으면 마음이 참 든든했다.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한결같이 축하해 주는 손에 꼽히는 지인들의 연락을 받자 생일이구나, 실감을 하면서도 어머님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런데 반나절이 지나도록 어머님은 연락이 없으셨다. 바쁘신가 보다, 하면서도 스멀스멀 서운한 마음이 올라왔다. 저녁이 되고 생일이 다 지나가도록 결국 어머님에겐 연락이 오지 않았다. 잊어버리셨나 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아니야. 어떻게 잊을 수가 있지. 그래도 며느리 생일인데 말이야... 서운했다. 




생일이 하루 지난 오늘 저녁 무렵에서야 어머님에게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미안한 마음이 가득 담긴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많이 서운했었는데 신기하게도 어머님 목소리를 듣자마자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어머님과 나는 어느새 밀린 수다를 늘어놓았다. 



"동서네가 왔었다면서요. 잊어버리셨나 보다, 저는 이제 한물갔구나 했어요. ㅎㅎㅎ"

"한물가기는~ 그래도 OO이 네가 큰 며느리인데 나한테는 첫 번째야."


어머님에게 서운하다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며느리가 몇이나 될까. 이렇게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고부 사이가 얼마나 될까. 어머님과의 통화를 마치며 생각했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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