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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Aug 02. 2022

고마워, 고마워

나는 변해가는 중입니다.

친정엄마의 이사를 코앞에 두고 이사 갈 집 청소를 돕고 왔다. 청소업체를 부르자는 말에 "돈이 얼만데!" 하며 엄마는 본인이 청소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혼자 해도 된다며 신경 쓰지 말라 했지만 그 말은 와서 도와달라는 말보다 무거웠다. 하필이면 엄마 이사 갈 집 청소 날 동생은 휴가를 떠났다. 우연인지 계획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내 속은 시끄러웠다. 그 마음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지만 말이다.



"우리가 가서 청소 도와드리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언제나 남편은 그렇다. 친정에 관한 일이라면 1초도 고민하지 않는다. 무조건 오케이다. 그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하다. 이번 청소 일도 그랬다. 동생이 휴가를 가서 더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성질 급한 엄마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이미 전날부터 청소를 시작하셨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도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닦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작아서 마치 초등학생 같았다. 아니.. 다른 사람 클 때 도대체 뭐 한 거야.. 사람이 왜 저리 작냐고..


"엄마. 우리 왔어. 그만하고 앉아서 쉬어. 우리가 할게."


엄마의 불편한 다리가 눈에 띄었다. 아직도 다 낫지 않은 다리.. 정말 징하게도 안 붙는다. 그런데도 그 다리로 참 열심히 일하는 엄마. 날씨도 우중충한데 마음마저 무거워질까 봐, 그러면 내 삶의 무게가 몇 배는 더 무겁게 느껴질까 봐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무거워지면 청소가 더 힘들어질 테니 말이다. 걸레질을 하고 또 했다. 닦아도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는 바닥. 역시 난 청소엔 소질이 없는 모양이다. 그는 나보다 더 부지런히 일을 했다.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면서 묵묵히 할 일을 찾아 했다. 



"엄마. 그냥 청소업체 부를 걸 그랬나 봐. 힘들어 죽겠네."

"얘는 돈이 얼만데 그래. 이렇게 슬슬하면 되지."

"엄마. 봐봐. 우리 왔다 갔다 기름값에...."

"조수. 여기 좀 닦아봐. 작아서 손 안 닿나?" 


내 잔소리가 길어질 것 같자 남편은 재빨리 나를 불렀다. 행여나 엄마와 부딪힐까 봐 떨어뜨리려고 한 남편의 노력을 안다. 


"키 큰 사람 오니 좋네. 나는 깡충깡충 뛰어도 안 닿는데. 자네가 키 크다고 일을 제일 많이 하네."

"OO 이가 키 큰 사람 좋아해서 절 고른 거잖아요."


엄마는 미안한 마음을 남편에게 전했고, 남편은 엄마의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듣고 너무 무겁지 않게 잘 받아주었다. 


"얼씨구. 둘이 죽이 잘 맞네."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만큼 나도 변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그렇게 크게 한번 웃고 청소를 이어나갔다. 키가 큰 남편은 위쪽을 맡고 중간 키인 나는 벽과 바닥을 맡았다. 엄마는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묵은 때가 묻은 것들을 설거지하듯 씻어냈다. 하루 종일 열심히 닦아내자 제법 깨끗해졌다. 몸은 끈적이고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가벼워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대를 잡은 남편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목과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아~ 시원하다~~"


남편에게 고마운 일들이 참 많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그런 날이었다. 

고마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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