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싶습니다."<스물다섯 스물하나>(2022)
나는 오랫동안 남의 속도에 기대 살았다.
그 습관의 뿌리는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방식이 그와의 관계에서도 익숙하게 반복됐다.
어릴 땐 원망이 먼저였다.
왜 나를 그렇게 눌러 두었을까. 왜 작게 만들었을까.
매일 비교의 자리에 앉히지 않았다면 달라졌을까.
언니는 따라갔고, 나는 뒤쳐졌다.
사람마다 속도는 다른데, 다독임은 없었다.
이제는 안다. 그 방식 또한 나를 위한 마음이었다는 걸.
그걸 인정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 시절까지 포함해 그게 지금의 나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다.
복종 대신 합의, 눈치 대신 요청과 응답.
아버지의 속도를 따라가는 딸에서, 그의 박자를 맞추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우리의 규칙은 단순하다: 요청 → 응답 → 합의.
예전엔 버릇처럼 그의 말이 곧 내 계획이 되었지만,
이제는 내 생각을 먼저 세운 뒤 기대어 본다.
“일 끝나고 운동해.”
“응. 근데 강아지 산책부터. 그다음에 할게.”
각자 레인에서 호흡을 맞추는 장면을 떠올리면 내 문장이 따라왔다.
결과보다 내 페이스. 오늘 몫을 해내기.
살다 보니 내 속도의 정의도 바뀌었다.
느려도 주저 않지 않는 속도.
멈출 땐 멈추고, 켤 땐 확실히 켜는 속도.
리모컨은 여전히 내 손에 있다.
이젠 두 사람의 화면이 동시에 켜진 채로.
오늘 몫은 각자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