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미생>(2014)
셋째 달부터 화면의 밀도가 달라졌다.
오전 2세트, 오후 3세트, 밤 1-2세트.
6-8시간이 보통이 됐다.
컨디션 좋은 날엔 60/10 × 8세트.
시간은 근육처럼 붙었다.
드디어 국어 1 회독을 끝냈다.
이해는 절반뿐이었지만, 내 인생에 드물던 동사가 생겼다. 끝냈다.
그 교재는 아직 버리지 못한다.
모서리는 닳고, 등은 테이프로 감겼고, 옆면엔 노랑과 핑크가 겹쳐 남아 있다.
첫 장 여백에는 “1 회독 완료 06.28 / 오답 재확인 07.12”.
누가 보면 낡은 책 한 권, 내게는 방법이 처음 글자가 된 증거였다.
첫 시험은 불합격.
예전 같으면 포기했을 것이다.
이번엔 서랍을 열었다. 오답장과 캘린더가 있었다.
“여기까지는 했다.”
그 문장이 불합격 통지보다 먼저 보였다.
다음 달 첫 줄을 적었다.
“타임라인 5컷 다시-1장부터.”
그 한 줄로 패배감의 볼륨이 낮아졌다.
밤에 <미생> 마지막 회를 틀어두었다.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내게 이렇게 들렸다.
지금은 칸을 채우는 사람, 언젠가는 문장을 쓰는 사람.
시간이 늘수록 회복의 중요성도 배웠다.
앉은 시간만큼 쉬는 시간도 챙겼다.
그때 집에서 제안이 왔다. “일부터 해볼래?”
공시를 버린 게 아니라 방향을 바꿨다.
낮엔 일, 밤엔 칸 하나.
예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한 칸.
이 장의 결론은 합격이 아니다. 남는 건 이 한 줄.
‘끝냈다’라는 동사가, 다음 시작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