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우아함은 무너졌을 때 드러난다. 안 좋은 일이 넘친 날 웃으며 인사 할 줄 아는 여유에서 우린 그 사람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마음이 두 조각 난 날에도 평소처럼 인사하고 웃고 공들여 사과 할 수 있는 태도.
인간은 존경 받는 사람이고 싶다. 엄마는 성격이 급한 편이라서, 뭐든지 빠르게라고 말하면서 말도 서둘러 말한다. 천천히 상대편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말하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려야 되는데. 나의 마음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정리되지 않은 상태의 감정 섞인 말투로 이야기한다. 말을 차분하게 하면 행동도 진중할 것이다. 밥 먹을 때도 성질이 급한 순서대로 빨리 먹는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천천히 먹어야 된다고 상식으로 우리는 많이 들었음에도.
딸은 느긋한 성격 이다보니, 엄마의 말과 행동이 자기한테 배려심이 부족해서라고 받아들이면서 마음까지 상처 받는다. 그러다보니 나는 내 마음은 그게 아니다. 딸이 오해 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한다. 나도 언제라도 화가 날 순 있지만,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기분이 성격이 되지 않게 남이 아닌 나의 기분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딸아, 엉성하여 부족함이 많은 엄마가 완벽하지 못하면서도 완벽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나름 힘들구나!
말도 행동도 급한 생활습관을 고치는 게 왜 이리 힘들까? 바꾸고 싶지만, 바꾸는 게 쉽지 않아 고민이다. 물론 사람이 한순간에 달라지기는 힘들다. 그저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 할 뿐이다. 사람은 몸에 익숙한 습관을 바꾸기는 어렵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고쳐보려고 해도 지금까지의 습관대로 자기의 스타일대로 유지 한다.
실은 수많은 명분과 고귀한 가치를 가지고도 인간이 자기 자신 하나 변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절절하게 체험한다면 남을 바꾸려 해서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소중한 관계를 낭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너와 나 사이의 오해, 실망, 원망의 고민을 하면서 `서로 이렇게 다가가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해 온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딸의 말을 끝까지 듣기 전에 혼자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살아가고, 동상이몽의 조짐을 감지하지 못한다. 지레짐작을 멈추고,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궁금한 것은 물어보자.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오해를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어차피 내가 바라는 것을 말해도 상대는 들어주지 않을 수 있다. 그런 경우는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지만, 몰라준다 해도 조금 아쉬울 뿐이라고 생각하자. 내가 나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에는 지장이 없으니까.
딸이 펼치는 인생이라는 경기에서 엄마는 같이 뛰는 동료 선수가 아니라,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를 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정신적으로 지탱해 주는 사람이고 싶다.
엄마는 너를 너그럽게 지켜보고 있으니 너도 내가 단점만 있는지 반문해 보았으면 한다. 그러면 엄마의 결점이나 나쁜 감정적 습관들을 보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너는 자신의 눈에 들어온 안 좋은 모습에만 집중하고 엄마의 장점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이상적인 어른과 어른의 관계로 갔으면 한다. 더불어 삶을 만족스럽게 관리하고 꾸려 나가면서 평소 건강한 자존감을 가꾸면 우리가 사이좋게 지내는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