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하나로 통했다
제2부: 나는 누구인가? (자각: 잃어버린 왕자의 귀환)
제4장: 모든 길은 하나로 통했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했던 진실
우리 모두는 보잘것없는 중생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진실을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도저히 그 말씀을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성불의 길을 걸어갈 자신이 없는 수행자들은 아라한(阿羅漢)을 목표로 하는 성문(聲聞)의 길을 선택했고, 홀로 깨닫는 독각(獨覺)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붓다의 길로 걷겠다고 발심한 보살조차 끝없이 스스로를 의심하며 일진일퇴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대체 우리가 감당하지 못했던 그 위대한 진실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바로 그 순간, 세상의 모습이 완전히 전환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길 위를 오가는 모든 중생은 더 이상 번뇌에 찌든 범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지혜의 빛이 서려 있었고, 그들의 몸은 연화대 위에 앉아 계신 금빛 부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단 하나의 모자람도 없이 완전한 성불에 이른 존재, 그것이 바로 붓다의 눈에 비친 우리들의 진짜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엄경』이 설파하는 위대한 선언,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즉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본래 아무런 차별이 없다’는 진실입니다.
만법귀일(萬法歸一),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장자궁자유'의 비유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질문이 남아있습니다. 아들은 과연 붓다의 고귀한 가문에 어울리는 법왕자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을까요? ‘거지’로 살았던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몸에 밴 습관과 마음가짐을 버리고, ‘왕자’의 품격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을까요?
저 또한 그 질문 앞에서 오랜 시간 헤맸습니다. 출가 직후 노스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법문을 듣고 일어서는데 "원빈스님 내게 공부해보지 않을래요?"라며 문득 제안을 하시더군요. 그날 곧바로 짐을 챙겨서 1년간 노스님께 공부를 배웠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귀한 시간이 지난 후 스승의 품을 떠나 학교에 입학을 결정했습니다. 스님께 삼배를 드리고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는데 화두를 하나 주시더군요.
"만법귀일(萬法歸一)인데, 일귀하처(一歸何處)오?"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이후 항상 만법이 되돌아가는 그 '하나'의 자리에 대해서 사유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모든 진리의 통일을 주장하는 『묘법연화경』은 제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경전이 말하는 회삼귀일의 사상이 곧 만법귀일과 같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단 하나의 길인 일대사인연이 부담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과연 내가 이 길을 짊어질 수 있을까?'
모든 강은 하나의 바다로 흐른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믿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성문과 연각 그리고 보살이라는 수행자의 믿음이 그러하고, 재가의 삶은 그 믿음이 만 가지로 훨씬 더 복잡합니다. 누군가는 돈을 믿고, 누군가는 과학을 믿으며, 누군가는 친구와 애인을 믿습니다. 가지각색의 대상을 믿고 추구하는 삶, 이것이 바로 만법(萬法)입니다. 이렇듯 천차만별의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착각과 이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그로 인한 부딪힘이 모든 분쟁의 원인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 길들은 서로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을까요? 사상가 C.S. 루이스는 이 문제에 대해 아름다운 비유를 남겼습니다.
"모든 강이 결국에는 바다로 흘러든다는 사실이, 강마다 고유한 강둑과 굽이와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돈에 대한 믿음의 강, 과학의 믿음의 강, 성문의 길을 따르는 강 등 갖가지 강물이 가진 고유한 풍경을 존중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강물이 결국 '하나의 바다'로 흘러든다는 위대한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1부에서 진단을 마친 우리 모두가 마주한 숙제입니다. 그리고 그 숙제를 풀기 위한 첫 번째 열쇠가 바로 『묘법연화경』의 심장, **‘회삼귀일(會三歸一)’**의 가르침 속에 있습니다. '세 가지 길은 결국 하나의 길로 돌아간다'는 이 위대한 선언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든, 어떤 길을 걸어왔든, 결국 모두가 존귀한 부처의 길 위를 걷고 있음을 알려주는 가장 따뜻하고 강력한 위로입니다.
하나의 탈것(一佛乘)을 위하여
붓다께서는 『묘법연화경』 「방편품」에서 이 위대한 진실을 직접 선언하십니다.
“사리불이여, 마땅히 알라. 모든 부처님의 법이 이와 같아서, 한량없는 수많은 방편과 갖가지 인연과 비유의 말로써 모든 법을 연설하시느니라. 이 모든 법은 다 하나의 탈것(一佛乘)을 위함이니라.”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강을 위태롭게 떠내려가고 있든, 결국에는 위대한 평화의 바다에 가닿을 것이라는 약속. 이것이 바로 『묘법연화경』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위로이자, 자존감 회복의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