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충격적인 고백: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부처였다"
붓다의 자존감 수업 5 - 붓다의 충격적인 고백: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부처였다"
“내가 성불한 지는 실로 한량없고 가없는 백천만억 나유타 겁이니라.” - 『묘법연화경』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중에서
4장에서 우리는 ‘모든 강이 결국에는 하나의 바다로 향한다’는 위대한 위로를 만났습니다. 각자의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든, 그 모든 삶이 존귀한 부처의 길 위에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안도감을 줍니다. 옆집 강아지도,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과 저 우주의 별도, 우리 모두는 같은 길을 걷는 도반입니다. 외로워하지 마세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 왜 붓다는 태어날 때 이런 선언을 하셨을까?
그것은 오만한 선언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존재를 향한 가장 위대한 존중의 표현이었습니다. '나(我)'만이 홀로 존귀하다는 것은, 남과 나를 비교하는 상대적인 존귀함이 아니라, 모든 분별을 넘어선 절대적인 존귀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붓다는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 존귀함은 나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것이기도 하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대한 질문이 생겨납니다. 어째서 우리는 이 진실을 까맣게 잊은 채, 스스로를 ‘거지’라 여기며 고통받고 있는 것일까요? 어째서 붓다는 이 진실을 처음부터 알려주지 않고, 수십 년에 걸쳐 그토록 길고도 자비로운 교육 과정을 거쳐야만 했을까요?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지금부터 펼쳐지는 붓다의 가장 충격적인 고백 속에 담겨 있습니다.
『묘법연화경』의 이야기가 중반부로 접어들면, 무대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현실 세계가 아닙니다.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에서는 갑자기 세상의 땅이 갈라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마치 온 우주가 멸망하는 듯한 대지진의 모습을 보며 만물은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갈라진 땅 한가운데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보살들이 자비로운 금빛의 모습으로 솟아오르자 만물은 비로소 안심합니다. 정말 놀라운 점은 무량한 대보살들이 한목소리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향해 “저희의 스승님이십니다”라고 외치며 예를 표했다는 점입니다. 이게 왜 놀라운 일일까요?
시간의 역설 때문입니다. 법화경 설법을 하시던 시기의 붓다는 깨달음을 얻으신 후 45년이 지났을 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3아승지겁에 가까운 무량한 세월 동안 수행해 온 대보살들을 제자로 둘 수 있었을까요? 이는 마치 스물다섯 살 청년이 백 살, 아니 천년 만년을 살아온 노인을 가리키며 “내 아들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순입니다.
이 거대한 모순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제자들을 위해 붓다는 마침내 자신의 진짜 정체를 밝히십니다. 이것이 바로 『묘법연화경』 후반부의 심장, **‘구원실성(久遠實成)’**의 가르침입니다.
“내가 왕궁을 떠나 깨달음을 얻고 45년간 설법한 것은, 사실 한 편의 잘 짜인 연극이었다. 나의 본래 모습은, 시간조차 가늠할 수 없는 아주 오래된 옛적에 이미 성불한 ‘본래 부처’이다.”
이 위대한 선언 앞에서, 우리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극작가가 남긴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온 세상은 무대요, 모든 남녀는 그저 배우일 뿐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역사 속 인물 석가모니는 바로 우리라는 관객을 위해 가장 완벽한 연기를 펼친 위대한 배우였습니다. 그가 겪은 80년의 삶은 우리에게 ‘이렇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는, 완벽하게 쓰인 한 편의 대본과 같았습니다. 땅에서 솟아난 대보살들은 바로 그 연극의 주인공이자 연출가였던 ‘본래 부처’께서 영겁의 시간 동안 가르쳐 온 진짜 제자들이었습니다.
대체 왜, 이미 완벽한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께서 이토록 길고 고단한 연극을 해야만 하셨을까요? 붓다는 이어서 그 절절한 부모의 마음을 또 다른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비유하면, 어떤 훌륭한 의사가 지혜롭고 총명하며 약을 잘 만들어 온갖 병을 잘 치료하느니라. 그에게는 아들이 백 명이나 있었는데, 독약을 잘못 마셔 마음이 어지러워 땅을 뒹굴고 있었느니라. … (아버지는) 방편을 베풀어 이 약을 먹게 하려고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내 이제 늙고 쇠약하여 죽을 때가 되었으니, 이 좋은 약을 여기에 남겨두노라. 이것을 먹으면 반드시 나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뒤, 다른 나라에 갔다가 죽었다고 소식을 전하였느니라.” - 『묘법연화경』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중에서
이 충격적인 고백은, 이제 우리를 향해 되묻습니다. 붓다의 삶이 중생을 위한 한 편의 연극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통스러운 삶 또한, 본래의 위대한 나를 되찾기 위한 한 편의 연극일 수는 없을까요?